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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장군의 산티아고 순례길 - 2 (월간산 21년 6월 게재)

2022.06.29 Views 1142 금기연



고요하고 역동적인 일출의 황홀경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을 받으러 가는 시간입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막히는 것 없이 넓디넓은 벌판에서 해님이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가슴은 마구 쿵쾅거리고 발걸음은 얼어붙어 버립니다.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이 사라집니다. 너무도 고요하지만 역설적으로 역동적이고, 거룩한 기운까지 느껴집니다. 그저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이내 또 무아경에 빠집니다. 순례길에서 느끼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끝없는 대평원 메세타
해발 고도 600~900m 고원지대인 메세타(meseta)’탁자란 뜻이랍니다. 남한 면적의 약 5배인 스페인의 3/4 가량이 메세타라고 하니 그 광활함이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넓디넓은 대평원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길. 그 길을 따라 순례객들이 묵묵히 걸어갑니다. 세찬 바람이 밀밭에 거센 파도를 일으키면 순례자는 조각배 마냥 몸을 가누기조차 힘듭니다.
물집이 곪아 절뚝거리는 한 여대생에게 약을 건넸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끌고 있는지, 포기하지 않고 순례를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밀밭
봄철 순례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의 하나입니다. 사방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지평선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원. 광활하다는 표현이 저절로 떠오르는 끝없는 대지에 무한정으로 펼쳐진 밀밭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바람이 지나갑니다. 때론 성난 파도처럼, 때론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길처럼. 변화무쌍한 동영상입니다.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미미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순례를 계속하는 자신의 대단함 또한 발견합니다.





포도밭의 장미
온 천지가 포도밭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입니다. 한 농원은 이랑 끝마다 장미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집에서 곱게 키워야 할 예쁜 장미꽃을 들판에 심어놓다니.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참 아름다웠습니다.
주인에게 이 농원은 집안 못지않게 중요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임이 분명합니다. 온 정성을 다해 자신의 철학이 담긴 포도주를 만들고 귀중한 소득을 올리는 곳...
농부의 소신과 여유와 낭만이 넘쳐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포도주라는 자부심에 이해가 갔습니다.






여유롭고 풍족한 목초지
순례길에서 마주친 한 목장입니다. 넓은 목초지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 양떼가 눈에 뜨입니다. 처음엔 뭔가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넓은 초원에 저렇게 적은 수의 양떼라니... 계속 이런 광경을 만나고 나서야 순례길 주변의 광활한 땅과 여유로움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감탄한, 맛있고 풍부한 고기도 오랜 시간 힘들게 걸은 후의 허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넓고 맑고 푸른 대지에서 여유롭게 자란 결과가 아닐까요. 우리의 성품도 환경을 바꾸면 여유롭고 풍족해지겠지요?






꽃으로 물든 아름다운 순례길
산과 언덕이 온통 꽃으로 덥혔습니다. 희고 노란 예쁜 꽃들이 온 산을 물들입니다. 철 십자가를 지나 얼마 되지 않은 곳에서 만난, 말 그대로 꽃동산입니다. 한참을 아름다운 광경에 취해 꽃길을 걷습니다.
간식까지 먹으며 머물다가 미련 속에 발걸음을 옮깁니다.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집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조금 전 아름다움에 취했던 기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순례길에서도 이따금씩 반전이 생깁니다. 인생 축소판이라고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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