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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칼럼]미국 토템족과 종북숙주의 나라
2015.03.12 Views 1991 관리자
이대근칼럼]미국 토템족과 종북숙주의 나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접근법이 의외라고 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이 안보문제를 안보문제답게 진지한 태도로 다루지 않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 포기했다’ ‘사초가 실종됐다’고 공세 펼 때를 돌이켜 보자. 포기와 실종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까지 박 대통령은 북방한계선이 북한에 넘어갔다는 걸 야당이 인정하도록 압박하는 일에 집착했다. 대통령, 여당, 국정원의 협공에도 야당이 끝까지 버텼으니 망정이지 만일 두 손 다 들었다면 남쪽의 북방한계선 관할권은 크게 훼손될 뻔했다. 설사 야당이 북방한계선을 포기한 게 사실이라 해도 북방한계선 사수를 내세운 집권세력이라면 감췄어야 했다. 북한이 “남쪽 정부가 포기했다니 이제 북방한계선은 무효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야당 잡겠다고 안보를 제물로 삼는 건 안보를 중시한다는 세력으로서 두 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한 번으로 끝나야 했을 그런 일들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장난감 수준이라는 북한의 소형 무인기가 남쪽에서 발견됐을 때 새누리당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방공망이 뚫렸다!” 이에 박 대통령은 “방공망 및 정찰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불안심리를 부추겼다. 야당도 가세했다. 사람 셋이면 호랑이도 만든다고 했다. 정부,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공포감을 자극하자 그땐 정말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나라가 들썩거렸던 걸 생각하면 지금쯤 안보에 작은 구멍이라도 났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은 볼 수 없다. 기우였다.
속는 것도 한두 번이고, 잘못도 한두 번이다. 세 번은 좀 곤란하다. 세 번은 피하는 게 좋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피습 사건이 나자마자 거의 자동적으로 전에 두 번이나 했던 태도를 반복했다. 한·미동맹 공격이라고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에 맞춰 정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고위 당·정·청 회의, 검찰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수사팀 구성 등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대응을 했다. 피습은 아무리 충격적이었다 해도 한 극단적 인사의 돌출행동이라는 사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수 시민들은 마치 한국인 전체가 미국에 죄를 지은 것처럼 속죄의 마음으로 충일되어 있다. 여당은 죗값을 치르기 위해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THAAD·사드)이라도 받아들일 태세다. 한국의 보수가 미국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미국을 토템으로 모시는 수준인 줄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선 배후세력, 종북세력 운운의 부풀리기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야당에 종북숙주라는 딱지를 붙인들 이상할 게 없다. 그들의 ‘종북어(從北語)사전’에 따르면 습격은 종북세력의 테러로 번역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테러후원세력이 된다. 미국은 테러후원세력을 테러집단과 동일시한다. 한국 제1야당을 테러집단으로 만들어 바치면 미국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랬을까? 그건 리퍼트 대사에게 개고기를 선물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최대 의미를 부여하고 최고의 수단으로 최대의 대응을 하며, 최고의 찬사와 최악의 저주를 교환하는 상황을 과잉이라고 해보자. 그걸 적용하면 한국은 과잉사회다. 대통령, 여당, 정부, 검찰뿐 아니라 보수세력에 북한까지 제각각 다른 방식과 수준이지만 다 도를 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마땅히 그럴 이유가 없는 일로 항상 요란하고 시끄러우며, 바로 그 때문에 격동이 몰아칠 듯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북방한계선 이상 없고, 방공망 그대로고, 동맹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개 드는 박근혜 정권의 과잉은 일망타진 욕심 때문이다. 평소에 잃은 걸 사건 하나, 실수 하나를 이용해 일거에 만회하려는 허황된 생각 때문이다. 국정을 바로잡을 능력이 없을 때, 자기가 한 일을 통해 평가받을 자신이 없을 때 그런 유혹을 받는다. 그렇게 한 게 벌써 세 번째다.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되면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자질, 집권세력의 수준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김기종씨가 습격했으면 김기종씨의 책임이다. 권력과 돈을 쥐고, 여론을 지배해도 정권에 신뢰와 권위가 없는 건 더 할 수 있을 때 그만둘 줄 아는 절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박 대통령이 사안의 본질대로 개인의 일탈로 규정했으면 이 나라는 대통령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단결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선호했고 그 결과, 나라는 두 쪽이 났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한 대한민국을 ‘미국 토템족’과 ‘종북숙주’가 사는 동물의 왕국으로 바꾸어 놓았다.

속는 것도 한두 번이고, 잘못도 한두 번이다. 세 번은 좀 곤란하다. 세 번은 피하는 게 좋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피습 사건이 나자마자 거의 자동적으로 전에 두 번이나 했던 태도를 반복했다. 한·미동맹 공격이라고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에 맞춰 정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고위 당·정·청 회의, 검찰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수사팀 구성 등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대응을 했다. 피습은 아무리 충격적이었다 해도 한 극단적 인사의 돌출행동이라는 사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수 시민들은 마치 한국인 전체가 미국에 죄를 지은 것처럼 속죄의 마음으로 충일되어 있다. 여당은 죗값을 치르기 위해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THAAD·사드)이라도 받아들일 태세다. 한국의 보수가 미국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미국을 토템으로 모시는 수준인 줄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선 배후세력, 종북세력 운운의 부풀리기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야당에 종북숙주라는 딱지를 붙인들 이상할 게 없다. 그들의 ‘종북어(從北語)사전’에 따르면 습격은 종북세력의 테러로 번역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테러후원세력이 된다. 미국은 테러후원세력을 테러집단과 동일시한다. 한국 제1야당을 테러집단으로 만들어 바치면 미국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랬을까? 그건 리퍼트 대사에게 개고기를 선물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최대 의미를 부여하고 최고의 수단으로 최대의 대응을 하며, 최고의 찬사와 최악의 저주를 교환하는 상황을 과잉이라고 해보자. 그걸 적용하면 한국은 과잉사회다. 대통령, 여당, 정부, 검찰뿐 아니라 보수세력에 북한까지 제각각 다른 방식과 수준이지만 다 도를 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마땅히 그럴 이유가 없는 일로 항상 요란하고 시끄러우며, 바로 그 때문에 격동이 몰아칠 듯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북방한계선 이상 없고, 방공망 그대로고, 동맹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개 드는 박근혜 정권의 과잉은 일망타진 욕심 때문이다. 평소에 잃은 걸 사건 하나, 실수 하나를 이용해 일거에 만회하려는 허황된 생각 때문이다. 국정을 바로잡을 능력이 없을 때, 자기가 한 일을 통해 평가받을 자신이 없을 때 그런 유혹을 받는다. 그렇게 한 게 벌써 세 번째다.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되면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자질, 집권세력의 수준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김기종씨가 습격했으면 김기종씨의 책임이다. 권력과 돈을 쥐고, 여론을 지배해도 정권에 신뢰와 권위가 없는 건 더 할 수 있을 때 그만둘 줄 아는 절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박 대통령이 사안의 본질대로 개인의 일탈로 규정했으면 이 나라는 대통령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단결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선호했고 그 결과, 나라는 두 쪽이 났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한 대한민국을 ‘미국 토템족’과 ‘종북숙주’가 사는 동물의 왕국으로 바꾸어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