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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실천하는 삶 …‘女星’ 명예 높이겠다

2014.07.23 Views 2597 관리자

봉사 실천하는 삶 …‘女星’ 명예 높이겠다

<13> 최초의 여성장군 양승숙
2014. 07. 22   17:22 입력 | 2014. 07. 23   09:08 수정

군 역사상 ‘여성장군 1호’ 등극 간호사관학교장으로 금의환향
전역 후 고향서 봉사활동 전념 다문화가정·노인 위해 발벗어
“군 복무로 못했던 나눔활동 이제는 마음껏 펼치고 싶어”

 

 

기사사진과 설명
노인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건강에 대해 강의 중인 양승숙 전 예비역 육군준장. 그는 현재 다문화 가정 한국어 교육과 강의, 의료봉사 등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형 기자

노인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건강에 대해 강의 중인 양승숙 전 예비역 육군준장. 그는 현재 다문화 가정 한국어 교육과 강의, 의료봉사 등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형 기자


 

“계룡대냐 자운대냐”. 2001년 11월 초 국방부 출입기자실의 시선은 이 두 곳에 집중됐다. 후반기 장성 정기인사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장군 탄생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병·간호병과의 대령 5∼6명이 물망에 올랐지만 간호병과, 그것도 계룡대 육군본부 간호병과장 양승숙 대령과 자운대 간호사관학교장 신숙호 대령의 2파전으로 좁혀지며 관심은 더욱 고조됐다. 중론은 후자에 쏠렸다. 그리고 같은 달 8일 오후 마침내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졌다. 명단의 이름은 예상외로 양승숙 대령이었다.

 

 

기사사진과 설명
2002년 1월2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양승숙 장군이 삼정도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02년 1월2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양승숙 장군이 삼정도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지나지 않아 매스컴에서 들이닥쳤죠.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고 마이크를 밀고 들어와 눈이 부시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일주일 내내 취재와 인터뷰가 줄을 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였죠”

 어떤 훈련을 받아도 괜찮았는데 정말 그때처럼 정신이 쏙 빠진 것은 처음이었다는 게 양 장군의 소감. 또 그만큼 군 내외를 막론하고 첫 여성장군 탄생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양 장군은 진급 발표 다음 해인 2002년 1월 2일 청와대에서 보직 및 진급신고를 했다. 3성장군 이상만 하게 돼 있는데 첫 여성장군이기에 대통령으로부터 계급장과 삼정도를 친수받았다. 그리고 바로 간호사관학교장으로 부임했다.

 1999년에 이은 두 번째 부임. 당시의 감격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법했다. 폐교될 위기에 놓인 학교를 되살리고 맞은 금의환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제가 1999년 처음 부임했을 때는 간호사관학교 폐교가 결정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저항도 있었고요. 오죽했으면 장관님한테 부대장 지휘경고를 받았을까요.”

 당시 앞날이 불투명했던 간호사관학교의 운명을 바꿔놓은 결정적 계기는 영부인(이희호 여사)의 방문이었다. 양 장군은 학교장으로서 영부인에게 간호사관학교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결국 이는 1년 뒤 폐교 철회로 이어졌다. 민간대학 출신인 것도 한몫했다. 다른 학교 출신인 학교장이 간호사관학교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더 호소력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양 장군은 2004년 1월 간호사관학교장직을 마치고 전역한 뒤 정치권에 입문했다. 폐교 문제로 만나면서 사람들과 얽힌 인연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꼭 후회되는 시간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덕분에 배운 것도 많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제가 사는 지역, 특히 농촌 현장을 돌아볼 수 있었을까요. 또 이제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은 다문화 가정의 상황을 알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를 잃으면 또 다른 하나를 얻는 법이잖습니까.”

 양 장군은 현재 고향인 논산·대전지역에서 활발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9년부터는 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 학감으로 취임해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작성·운영하고 전공을 살려 노인들의 건강을 위한 강의도 직접 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도 진행하고, 대학이나 간호사협회 등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출강한다. 장애인태권도회, 사회인체육대회 등에서도 도울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때로는 일주일이 모자랄 때도 있다. 2012·2013년 연속으로 치과의사들을 이끌고 캄보디아에 의료봉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올해도 캄보디아에 갈 예정이다. 군에 있을 때 시간에 쫓겨 해보지 못한 봉사활동을 마음껏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양 장군에게 남은 소망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최초의 여성장군이라는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할 때 최초의 여성장군 아니냐면서 알아주는 그 순간이 가장 기쁩니다. 여군 역사에 있어서도, 간호학과에서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 아닙니까. 장군 진급 후 사복을 입고 식당에 가더라도 알아보고 하니까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고, 시장에 갈 때도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덜해졌지만,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생활할 것입니다. 물론 봉사도 열심히 해야죠.” 
 

 

 양승숙 장군은?

 

   1950년 3월 21일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대전 호수돈여자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4월 간호후보 29기로 임관해 국군수도병원 간호부장과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 국방부의 간호사관학교 폐교 결정 이후, 여성 사회단체와 여성 정치인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2001년 5월 간호사관학교 폐지 백지화를 이끌어 내며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2001년 11월 8일 육군본부 간호병과장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며 대한민국 1호 여성장군이 됐다. 이어 2002년 1월 3일 국군간호사관학교 18대 교장으로 재임하며 학교의 역사를 재정립함은 물론 학교발전기금을 만듦으로써 간호사관학교 발전에 기여했다. 이후 2004년 1월 9일 국군간호사관학교장에서 물러나며 31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했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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