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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해지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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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민이 된지도 벌써 5개월로 접어들고 있다. 전근 온 다음날 아이의 참고서를 사기 위해 동네 서점에 갔다.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마트에 들러 긴 우산을 하나 사서 비를 피했고, 서점에 들어가면서 출입구에 있는 우산꽂이에 우산을 두고 책을 고르고 있었다. 서점 한 쪽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서너 명이 책을 고르고 있었다. 책값을 계산하고 서점을 나오는데 우산이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책을 고르던 중학생들도 안보이고…. 마음씨 좋은 서점 주인이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쓰던 우산을 주어 다행히 비를 맞지는 않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방금 산 물건을 잃어버린 씁쓸함이란.
필자는 형사사건과 관련한 각종 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과 형사단독 재판을 맡고 있다. 그런데 영장 업무를 하다 보니 위와 같은 경우가 많이 일어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은행의 현금지급기를 이용하다가 깜빡하고 지갑을 두고 나오거나 찾은 돈을 그대로 두고 오는 경우, 휴대전화를 두고 오는 경우이다. 그리고 피해 고객의 뒤 또는 옆에서 은행 업무를 보던 고객이 이를 가지고 간다. 이는 절도죄에 해당한다. CCTV에 돈이나 지갑을 가지고 가는 모습이 찍히고, 피의자(?) 고객은 은행 일을 보러 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영장을 발부받아 추적을 하면 쉽게 누구인지 밝혀지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바른생활 시간에 ‘철수가 길에서 돈을 주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주제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에 대한 답은 아마 ‘경찰서에 가지고 간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현실의 많은 어른들은 초등학교에서 배운대로 하고 있지 않아 절도범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계획적이고 치밀한 범죄는 아니다. 우발적이고 순간적인 욕심 내지 호기심의 결과이고, 이런 우발적인 범행에 대해 판사가 실형을 선고할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범죄 자료에는 버젓이 ‘범죄자’로 기재되니 조금 창피한 상황이 된다.
음주운전에서도 이 같은 상황은 일어나고 있다. 형사단독 판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재판하는 범죄가 ‘음주운전 금지 규정을 2회 위반하고 다시 음주운전을 한’ 도로교통법위반죄이다. 법정에 오는 피고인 대부분 반듯한 직장과 화목한 가정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시민이지만 ‘1년 이상 3년 이하 징역형이나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재판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사람은 술을 마시든지, 운전을 하든지 한 가지만 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대리운전비 몇 만 원을 아까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형사판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생각은 우리가 이미 알아야 할 것은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는 것이다. 필자의 판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원에 견학을 오는 중·고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판사와 대화’하는 시간이 있다. 판사 몇 명이 순번을 정해 이 업무를 하고 있다. 주로 학생들의 궁금증에 답변을 하는 것인데, 물론 가장 많은 질문은 ‘월급 얼마 받으세요’라는 질문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이지요’라는 질문이다. 아이들의 질문이 대법원 판결에 버금가는 정치한 법리를 설시한 판결을 해봤는지 묻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질문을 받으면 머리가 하얘지고 십 수 년의 판사생활도 하얘진다. 아이들의 이 질문은 내게 ‘판사님! 가슴이 아픈 만큼 딱한 처지의 사건에서 현명하면서도 감동이 있는 판단 해 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들린다. 판사는 공정하지만 가슴은 따뜻하여야 한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판사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아이들의 질문이야 말로 정말 정답도 없고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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