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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1월호 권두언 `우리에게도 클라우드비치가 나올 것인가?`

2015.02.02 Views 2085 관리자


우리에게도 크라우제비츠가 나올 것인가?

 

대한민국 성우회 회장 김 홍 래 예) 공군 대장

 

2015년 을미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작년 한해는 군 안팍으로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해가 바뀌면 지난 해를 뒤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것이 일상지만, 올해만큼은 사회 전반에 걸쳐 뼈를 깎는 각오로 출발해야 한다. 특히 과거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군을 다시 창설한다는 각오로 혼연일체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우리의 젊은 장교단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동안 우리 군은 전쟁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냈고,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는데도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군의 발전은 지체되고 있다. 젊은 장교들이 훗날 우리 군을 뒤돌아보며 무한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자. 그 교훈을 근세 유럽에 전성기를 가져왔던 군의 역사에서 찾아본다.

18세기 말 프랑스 시민혁명은 국민의 군대를 탄생시켰다. 더 이상 왕을 위해 싸우는 용병이 아니라,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국민병이 된 것이다. 이들의 애국심은 절대 충성만을 강요당했던 왕의 군대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시민 누구나 국가수호의 의무를 가지도록 법으로 명문화하는 징병제를 세계 최초로 제정하였다. 나폴레옹은 징병제가 갖는 잠재적 파괴력을 재빨리 인식하였다. 매년 수십만 명씩 징집되는 병력은 샘솟듯이 솟아나는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

때마침 동력의 개발로 인해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산업의 속도와 양을 혁명적으로 증가시켰다.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이 두 가지를 신속히 결합하였다. 징병제로 인한 국가 총력전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동전을 접목하여 대량의 군대를 주변국들과의 전장에 신속히 투사한 것이다.

나폴레옹의 기동성은 단순히 물리적인 기동능력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물리적 기동성에 사고의 기동성이 결합되어 당시의 적의 입장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전을 수행하였다. 여기에 조직력과 화력을 더하여 항상 적이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적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집중시킴으로써 적국의 저항의지를 꺾고 패퇴시키곤 하였다.

나폴레옹 군대와 대치했던 독일제국의 전신인 프로이센 군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나 전투에서 단 5일 만에 나폴레옹 군대보다 더 많은 포로와 사상자를 내고 패주하다 거의 괴멸된 것이다. 이로 인해 프로이센 영토와 국민의 절반을 잃고, 42천명 이상의 군대를 갖지 못하도록 제한받는 사실상 프랑스의 위성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여기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예나 전투의 패배가 오히려 프로이센 군대의 개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예나 전투의 패배가 프로이센 군대 혁신의 기원이 된 것이다. 프로이센 군대의 혁신은 예나 전투이후 뼈를 깎는 자기반성에서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앞장 선 인물 중 하나는 샤른호르스트라는 장군이었다. 그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나폴레옹 군대에 대한 철저한 연구였다. 나폴레옹의 군사조직과 전술을 상세히 해부하여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군제를 만들고, 참모본부를 창설하였으며, 이를 연구하고 훈련할 육군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무엇보다도 42천명 이라는 군대의 수적 제한을 극복할 수 있는 동원예비군 제도를 창시하였다. 이것은 세계 최초로 근대적 개념의 동원예비군 제도였다. 42천명의 현역군은 사실상 평시 훈련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이 훈련 후 시민으로 돌아가 유사시 동원할 수 있도록 양성된 예비군은 약 15만여 명에 달하였다.

프로이센 군대의 장교단은 육군대학 교육과정을 통해 군사 전문가로 양성되었다. 이들은 정치와 전쟁의 관계, 전쟁 지도로부터 전술제대 지휘에 이르기까지 군사전문가로서의 전문성 계발에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샤른호르스트의 수제자인 크라우제비츠를 통해 불후의 군사 사상서인 전쟁론으로 집대성 되었다.

이후 프로이센 군대는 워털루에서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과 연합하여 나폴레옹에게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이를 이어받아 프로이센 군대의 개혁을 완성시킨 몰트게는 대 오스트리아 전쟁(보오 전쟁), 대 프랑스 전쟁(보불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비스마르크 재상이 통일 독일제국 건설의 위업을 달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을미년 새해부터 우리 젊은 후배장교들에게 선배 장교의 한사람으로서 나폴레옹과 프로이센 군대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은 우리에게도 나폴레옹과 샤른호르스트, 크라우제비치, 몰트케와 같은 명장과 군사사상가가 나오고,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하는 획기적인 군발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전쟁양상은 어떤 모양일까? 물론 한반도에서 전쟁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만일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어떤 형태로 전개될 것인가? 혹자는 핵무기의 발달로 인해 과거 12차 세계대전, 625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면전 기동전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중동지역에서와 같은 동시다발적인 소규모 비정규전, IS처럼 전선이 따로 없고 군인과 민간인의 구별이 모호한 형태의 민간전쟁(War amongst people), 첨단 IT에 의한 전자전, 하이브리드 전쟁, 4세대 전쟁 등을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의 현 국방개혁계획은 군 규모를 50여만 명으로 줄인다고 한다. 전력증강을 위한 국방예산은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는 핵 및 다량의 미사일 등의 비대칭전력과 재래식 무기로 중무장한 110만의 북한군과 지근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다. 그들과의 전쟁형태는 어떤 모양이 될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새해 아침 깊은 생각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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