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는 한 세트에 11조원, 2015년 국방예산 37.5조원의 30% 가까운 액수다. 노무현 정부 때 미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처음 제기했는데, 그때 노 정부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사드가 한-중 관계를 해칠 수 있고, 돈이 많이 들고, 성능도 아직 확실치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에 따르면, 2008년 1월 국방부를 방문한 이명박 당선인에게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같은 취지의 보고를 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인수위에 사드 지지파가 많았지만 이명박 정부 임기 중 사드 논란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자 미국이 사드 문제를 다시 꺼냈다.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미·중 군사력 격차는 5~6년 전에 비해 점점 좁혀지는 반면 미국 국방예산은 계속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으로서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구실 삼아 한국 돈으로 사드를 개발·배치하고, 그걸로 대중 군사우위를 유지하려는 것 아닌가 싶다. 둘째, 전시작전통제권과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박근혜 정부의 대미 안보의존성이 강하다고 보고, 그런 여건을 활용하여 사드 배치를 매듭지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
지난 4~13일 사이에 일어난 일은 최근 사드 문제가 상당히 깊숙하게 논의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2월4일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이 한-중 국방장관 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우려’를 표명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국과 지속적 협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즉각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하자 13일에 커비는 “공식적 협의나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지속적 협의가 있었다”가 “공식적 협의나 논의는 안 했다”로 바뀌었지만, 그건 오히려 “비공식적 협의는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실토한 셈이다. 그즈음에 나온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은 궁금증과 함께 불안감을 더해준다.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그리고 왜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미 협상에서 우리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미국이 밀어붙이면 결국 어쩔 수 없는데 그때까지라도 국민들 맘 편히 살라고? 아니면 한-중 관계에서 사드 문제를 카드로 쓰기 위해서? 모호성 유지가 미국을 상대로 하는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다. 미국이 누군가? 외교의 백전노장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이미 작년 7월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작년 11월 26일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는 국회 간담회에서 사거리가 2000㎞나 되는 사드는 결국 대중국용이라고 지적했고,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이 금년 2월4일 사드 배치에 대해 다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유념해야 할 점이다. 외교정책 결정 과정은 ‘상대방의 본심을 읽어내는 일(perception)’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내 사드 배치에 중국 지도자들이 작년부터 수차 우려를 표명한 건 중국이 이미 박근혜 정부의 본심을 읽었고 차후 대응계획까지 세워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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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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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