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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은 국가와 국민이 베풀어 주는 곳에서 돌아가야지
2022.09.27 Views 443 문영일
용사들은 국가와 국민이 베풀어 주는 곳에서 돌아가야지
광복당시 교과서에서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을 읽은 기억이 난다. 주 내용은, 왜정시대 빈곤을 탈피하고자 만주로 이주한 주인공이 주변 중국인들로부터 박해와 설음을 받아가며 살아가던 어느날, 먹을꺼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다 마적대에게 맞아 죽어가면서 “나를 <붉은 산>에 묻어다오”라 유언하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붉은 산’은 바로 고향, 당시의 헐벗은 한국땅을 의미한다 하였다. 주인공은 죽어 옛 고향으로 가고싶어 했고, 그럴 수 있도록 묻히고자 했다는 것이다.
- *. 참고로, 필자 연구결과 ‘붉은 산’(赤山)은, 아마도 우리 역사상으로는, 내몽골 지방에 지금도 실존하는 지방 이름으로,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원고향(만주와 몽골지대 ‘흥융화문화’의 중심지)이기에, 우리 바로 앞 선조들 까지는 죽어 혼이라도 그곳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노래에 ‘북망산천 가는 길에’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죽어 ‘북으로 갈 수 있는 곳, 또는 북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묻히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실제로 지금도 흔히 북망할 수 있게 매장하고 있다. -
요전에 ‘돌아가신’ 이어령선생은,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한반도 사람들의 유래가 저 ‘바이칼호’ 근방이기에 죽어서는 영혼이 그곳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라 하였다. ‘돌아가셨다’는 인사말은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쓰이고 있으며, 그것은 곧 옛사람들과 같이 ‘사자의 소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사십구제’가 있다. 가신님을 위해 정성을 다함으로서 내게도 운복이 돌아온다는 의미에서 예를 다한다는 의미의 장례절차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사후 거소에 대해 갈 사람이나 남을 사람이나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국가는 국가대로 민간은 민간 나름대로 최대한의 경건함을 다하여 사후 거소를 선택하고 절차를 다한다. 특히 국가에서는 특별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생애를 바친) 용사들을 예우하고 기리기 위해 옛날에는 장춘단을 마련하였고, 지금에는 현충원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정부와 국민은 일직부터 ‘위국헌신’한 국군용사를 위해 <서울국립현충원, 동작동국군묘지>를 설립운영하다가 만장 – 이미 조성된 도심속에 마련되었기에 - 이 되자 대전교외에 현대하된 ‘대전 현충원’을 설립 운영해 왔다. 그런데, 도중에 “장군이 거들먹거린다, 미국 바지가랭이만 붙들고...”라고 말하는 대통령시절과, “김정은 방문하면 한라산 정상에 헬기장을 만들어 환영하겠다”는 넋나간 국방장관 시절을 지나면서 용사(베터런)에 대한 사후거소 예우가, ‘효과적 국토이용(?)’을 이유로(아마도 고의적?), 거의 완전할 만큼 피폐해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가 되었다.
서울현충원이 만장이 되었다고 대전현충원으로 가더니, 최근에는 병사들과 장교와 심지어는 장군도 구분없이 화장하여 한 곳, 한 지역, 한 평 땅에, 오는 순서대로 약식 장례로 – 민주주의 ?, 평등? 한답시고- 매장한다더니, 2022년 이제 와서는 급기야 그나마 “예산이 부족하여 땅을 확보할 수 없어서”라는 불충하고도 불경스러운 핑계로 용사들의 ‘돌아갈 길’을 실망하게 하고 있다.
우리 사람들이 흔히 예를 드는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가 보시라. 수많은 세계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무명용사들과 기명용사들 그리고 생애를 바친 용사들의 전신매장지와 그 각각의 비석들의 엄숙함을, 국가와 국민의 용사에 대한 예우를. 그곳에서 매장지가 부족하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 본적 없거니와, ‘본의 아니게’ 충혼당에 유골안치를 택한다는 말은 물론 들은 적이 없다.
한때 매장지가 국토효율성을 저해하고 관광사업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이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되고 효율적 과학영농시절에 그것은 옛말이 되었다. 그래서 국가환경개선의 일환으로 골프장 장려하듯 오히려 ‘공원묘지’를 장려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납골시설도 있지만, 여전히 근사한 봉분과 비석들이 적절한 지면을 찾이하여 주를 이루면서 더욱 확장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백두대간에 올라가 보라, 아니 멀리서 쳐다만 보아도 우리국토가 ‘국군묘지’로 인해 국토효율성을 저해당할 것이라고, 그래서 비록 민간 공원묘지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으나 국군묘지만은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들지 않을 것이다.
당국은 더 이상 용사들의 심정을 상하지 않게, 더욱이 감히 ‘예산부족’이라는 불충과 불경스런 말씀은 거두고, 더 이상 늦기전에 충분한 국군묘지를 확보하고, 용사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전신매장이던, 평장이던, 충혼당 유골안치던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기를, 용사의 한 사람으로 간곡히 당부하는 바이다. 그래야 우리 용사들도 국가와 국민들이 베풀어주는 ‘위국헌신 명예의 전당’에, 비석 하나 세운 밑에, 기꺼이 안도하며 누웠다가 우리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소망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9월 추석에, 한국국가안보전략사상사(학)연구회 대표 문영일
광복당시 교과서에서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을 읽은 기억이 난다. 주 내용은, 왜정시대 빈곤을 탈피하고자 만주로 이주한 주인공이 주변 중국인들로부터 박해와 설음을 받아가며 살아가던 어느날, 먹을꺼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다 마적대에게 맞아 죽어가면서 “나를 <붉은 산>에 묻어다오”라 유언하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붉은 산’은 바로 고향, 당시의 헐벗은 한국땅을 의미한다 하였다. 주인공은 죽어 옛 고향으로 가고싶어 했고, 그럴 수 있도록 묻히고자 했다는 것이다.
- *. 참고로, 필자 연구결과 ‘붉은 산’(赤山)은, 아마도 우리 역사상으로는, 내몽골 지방에 지금도 실존하는 지방 이름으로,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원고향(만주와 몽골지대 ‘흥융화문화’의 중심지)이기에, 우리 바로 앞 선조들 까지는 죽어 혼이라도 그곳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노래에 ‘북망산천 가는 길에’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죽어 ‘북으로 갈 수 있는 곳, 또는 북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묻히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실제로 지금도 흔히 북망할 수 있게 매장하고 있다. -
요전에 ‘돌아가신’ 이어령선생은,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한반도 사람들의 유래가 저 ‘바이칼호’ 근방이기에 죽어서는 영혼이 그곳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라 하였다. ‘돌아가셨다’는 인사말은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쓰이고 있으며, 그것은 곧 옛사람들과 같이 ‘사자의 소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사십구제’가 있다. 가신님을 위해 정성을 다함으로서 내게도 운복이 돌아온다는 의미에서 예를 다한다는 의미의 장례절차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사후 거소에 대해 갈 사람이나 남을 사람이나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국가는 국가대로 민간은 민간 나름대로 최대한의 경건함을 다하여 사후 거소를 선택하고 절차를 다한다. 특히 국가에서는 특별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생애를 바친) 용사들을 예우하고 기리기 위해 옛날에는 장춘단을 마련하였고, 지금에는 현충원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정부와 국민은 일직부터 ‘위국헌신’한 국군용사를 위해 <서울국립현충원, 동작동국군묘지>를 설립운영하다가 만장 – 이미 조성된 도심속에 마련되었기에 - 이 되자 대전교외에 현대하된 ‘대전 현충원’을 설립 운영해 왔다. 그런데, 도중에 “장군이 거들먹거린다, 미국 바지가랭이만 붙들고...”라고 말하는 대통령시절과, “김정은 방문하면 한라산 정상에 헬기장을 만들어 환영하겠다”는 넋나간 국방장관 시절을 지나면서 용사(베터런)에 대한 사후거소 예우가, ‘효과적 국토이용(?)’을 이유로(아마도 고의적?), 거의 완전할 만큼 피폐해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가 되었다.
서울현충원이 만장이 되었다고 대전현충원으로 가더니, 최근에는 병사들과 장교와 심지어는 장군도 구분없이 화장하여 한 곳, 한 지역, 한 평 땅에, 오는 순서대로 약식 장례로 – 민주주의 ?, 평등? 한답시고- 매장한다더니, 2022년 이제 와서는 급기야 그나마 “예산이 부족하여 땅을 확보할 수 없어서”라는 불충하고도 불경스러운 핑계로 용사들의 ‘돌아갈 길’을 실망하게 하고 있다.
우리 사람들이 흔히 예를 드는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가 보시라. 수많은 세계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무명용사들과 기명용사들 그리고 생애를 바친 용사들의 전신매장지와 그 각각의 비석들의 엄숙함을, 국가와 국민의 용사에 대한 예우를. 그곳에서 매장지가 부족하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 본적 없거니와, ‘본의 아니게’ 충혼당에 유골안치를 택한다는 말은 물론 들은 적이 없다.
한때 매장지가 국토효율성을 저해하고 관광사업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이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되고 효율적 과학영농시절에 그것은 옛말이 되었다. 그래서 국가환경개선의 일환으로 골프장 장려하듯 오히려 ‘공원묘지’를 장려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납골시설도 있지만, 여전히 근사한 봉분과 비석들이 적절한 지면을 찾이하여 주를 이루면서 더욱 확장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백두대간에 올라가 보라, 아니 멀리서 쳐다만 보아도 우리국토가 ‘국군묘지’로 인해 국토효율성을 저해당할 것이라고, 그래서 비록 민간 공원묘지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으나 국군묘지만은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들지 않을 것이다.
당국은 더 이상 용사들의 심정을 상하지 않게, 더욱이 감히 ‘예산부족’이라는 불충과 불경스런 말씀은 거두고, 더 이상 늦기전에 충분한 국군묘지를 확보하고, 용사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전신매장이던, 평장이던, 충혼당 유골안치던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기를, 용사의 한 사람으로 간곡히 당부하는 바이다. 그래야 우리 용사들도 국가와 국민들이 베풀어주는 ‘위국헌신 명예의 전당’에, 비석 하나 세운 밑에, 기꺼이 안도하며 누웠다가 우리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소망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9월 추석에, 한국국가안보전략사상사(학)연구회 대표 문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