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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장군의 산티아고 순례길 - 11 (월간산 22년 9월 게재)
2022.09.03 Views 7382 금기연
너무 호젓한 길
때로는 호젓하다 못해 으스스한 느낌의 숲길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혼자만의 상념에 젖거나 고독을 즐기기에 좋은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례길이 항상 안전하지만은 않습니다. 현지 노숙자가 순례자로 가장하여 숙소에 잠입한 뒤 도난사건이 발생한 적도 있었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강도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자 순례를 하더라도 이렇게 호젓한 곳을 지나야 할 때는 여럿이 함께 가기를 권장합니다.
특히나 여자 혼자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안전수칙의 하나입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순례
온가족이 함께 하는 순례가족을 만났습니다. 잠시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 부러웠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다 보니 방학에 며칠씩 시간을 내어 조금씩 나누어 걷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아이들에 맞게 하루에 걷는 거리도 짧게 한다고요.
아이들도 힘들기는커녕 마냥 즐거운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나는 왜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을까? 어떤 추억거리를 남겼을까?
좋은 아빠가 되려하기보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기분 좋은 숙제입니다.
단체 순례
이따금씩 단체 순례자들을 만납니다. 대개 버스에서 우르르 내려 떼를 지어 왁자지껄 떠들고 웃는 등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결코 순례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닙니다. 인솔자를 따라만 가면 되니 계획을 세우거나 알아보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취향과 신체 상태에 맞지 않게 움직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순례에 어떤 격식이나 방법이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자신에 맞게 진행할 일입니다.
최소한 남들을 방해하거나 피해는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입니다.
부부 순례자
부부 순례자들도 제법 많습니다. 두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보노라면 혼자 온 것이 머쓱해지기도 합니다. 모녀나 모자 또는 남매가 함께 온 경우도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더군요.
우연히 만난 한 부인은 이제껏 살면서 남편으로부터 참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순례가 가장 좋은 선물이었답니다.
다음에는 꼭 함께 와보라는 권고를 되풀이하더군요.
사이가 틀어져버리기도 한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오랜 기간을 함께 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노력만 한다면 상대가 누구이던 관계를 좋게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겁니다.
친교의 즐거움
길을 걷다보면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됩니다. 같은 목적지로 같은 과정을 겪으며 같이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걸음에 따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지라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영어나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면서도 즐겁게 어울려 완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통하게 되면 순례의 즐거움은 훨씬 커집니다.
정보를 주고받고, 시국에 관한 토의 나아가 한류 등 한국 소개도 가능해지니까요. 약간의 생존 스페인어를 익히면 각종 예약도 수월해집니다.
애기 업고 순례를
애기를 업고 순례를 나선 모습은 현지인에게도 예사롭지 않은가 봅니다. 남녀노소, 국적, 직업, 종교 등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걷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느 설문에 따르면 종교적 이유에서, 어려운 결단을 앞두고 정리를 위해서, 또는 배우자나 혈연을 여의는 등 심한 역경을 겪어서 온 심각한 사연의 순례자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직장을 옮기거나 군에서 전역하고 여유시간 활용을 위해, 운동이나 새로운 도전으로, 심지어는 그냥 와봤다는 이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