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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交가 우물에 빠진 날

2015.04.01 Views 2047 관리자

박두식 칼럼] 外交가 우물에 빠진 날
박두식 논설위원
입력 : 2015.04.01 03:20

 

아무리 개방·국제화해도 세계가 돌아가는 것 모르고
우물 안에서 악다구니하는 고질병 고쳐지지 않아
이 퇴행적 흐름에 이제는 외교까지 휩쓸려 가는가


박두식 논설위원
 
박두식 논설위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벌레`다. 휴일에도 사무실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서 출근하는 사람이다. 그런 윤 장관이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엔 어쩔 수 없이 30년 넘게 일해 온 외교부를 떠나야 했다. 노무현 정부 막판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차출`됐던 전력이 문제가 됐다.

윤 장관은 `박근혜 캠프`에서 다음을 기약했고, 외교·안보 핵심 참모로 떠올랐다. 장관 취임 초기 그는 주말도 없는 전일(全日) 야근으로 화제를 낳았다. 외교부에선 새벽 1시 넘어서까지 간부회의가 열리는 날이 허다했다. 윤 장관은 한밤중에 과자와 음료를 옆에 두고 대통령에게 가는 보고서를 직접 손보고 다듬었다. 보고서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장관의 부지런함이 반드시 외교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와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을 놓고 외교부를 향해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윤 장관이 직접 나섰다. 그는 며칠 전 전 세계에 근무하는 재외(在外)공관장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6400여 자(字)가 넘는 이 연설의 요지는 `한국 외교는 역대 최상(最上)인데 무지(無知)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한다`는 것이다.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받은 외교관이 이런 어투로 격정을 쏟아낸 것 자체가 아주 드문 일이다.

윤 장관은 연설에서 한 미국 연구원이 칼럼에서 한국의 AIIB 가입 결정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라는 고래들을 길들인 의기양양한 새우`로 비유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한국에서만 비판이 쏟아질 뿐 바깥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윤 장관의 주장은 오독(誤讀)에 가깝다. 이 칼럼의 필자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이자 일본 석좌인 마이클 그린이다. 이 글은 한국이 강대국의 요구에 반응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규칙과 규범을 만드는 리더가 돼야 하고, 그래야 워싱턴과 베이징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실 국내에서 나온 외교부 비판과 다를 게 없다. `반응국가(reaction state)`에서 벗어나 `주도국가(leading state)`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주문이기도 하다.

솔직히 윤 장관이 갑자기 이런 돌발적 발언을 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는 미스터리다. 몇몇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물어도 `장관 본인의 소신`이라고만 할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드디어 우리 외교도 대한민국이라는 `우물` 안으로 몸을 던졌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의 변치 않는 특징 중 하나가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고 `우리끼리` 치고받는 현상이다. 아무리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올라섰고, 수십 년에 걸쳐 대외 개방과 국제화가 이뤄졌어도 이 점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 중인 자원외교가 `우물 안 악다구니`의 대표적인 예다. 유가(油價)와 국제 광물 가격이 떨어진 지금이야말로 자원외교의 적기(適期)다. 미국·중국·일본 등 세계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자원외교가 비리와 동의어(同義語)가 돼 버렸다. 얼마 전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우리 국회의장과 산업부 장관 앞으로 항의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한국의 야당 국회의원이 한국석유공사가 KRG에 `뇌물`을 주고 유전(油田) 사업권을 따낸 것처럼 폭로하자 발끈한 것이다. 야당에서 문제 삼은 뇌물은 국제 관행으로 자리 잡은 서명 보너스다. 이 말 한마디로 5000억원 이상 들어간 쿠르드 유전 사업이 위기를 맞았다.

비슷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최근 여당 대표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부르는 실언(失言)을 하자 야당 대표가 `이적(利敵) 발언`이라고 문제 삼았다. 여야가 북핵을 놓고 단 한 번도 머리를 맞댄 적도 없으면서 이런 입씨름이나 벌이고 있다. 북핵을 실질적 안보 위협으로 여기는 국제사회가 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박 대통령이 `제2의 중동 붐`을 강조하면서 청년들의 중동 진출을 권한 조크도 그렇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이 문제의 현실성을 얼마나 따져본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일제히 달려들어서 대통령을 향해 `너나 가라, 중동` 해대는 것 역시 지극히 한국스러운 현상이다. 그저 우리끼리 우물 안에서 치고받고 있는 것이다.

이 우물의 경계에 서서 바깥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몇몇 기관 중 하나가 외교부다. 정권에 따라 부침은 있었지만 그래도 외교부는 국익(國益)의 관점을 앞세워 이 역할을 수행하려고 애를 써 왔다고 믿는다. 노무현 정부에서 좌파의 반대를 이겨내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를 타결지은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외교장관이 정권의 호위 무사로 나서게 되면 이런 기대들은 다 접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진짜 외교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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