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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국방장관이 700년전 전투에 주목하는 이유는

2015.02.02 Views 3217 관리자

한민구 국방장관이 700년전 전투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민구 국방장관(자료사진)

최근 한민구 국방장관이 기자간담회나 강연에서 많이 언급하는 단어가 바로 ‘크레시 전투’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병영문화혁신, 군사대비태세 점검 등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한 장관이 700년 전에 벌어진 전투를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국방부가 올해들어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창조국방’의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 ‘중세의 꽃’ 기사의 종말 불러온 크레시 전투

크레시 전투는 영국과 프랑스간에 벌어진 백년전쟁(1337~1453년) 기간에 발생한 전투다.

1346년 8월, 영국의 에드워드 왕은 파리 공격에 실패한 뒤 북부의 크레시로 후퇴한다. 프랑스군은 전국의 기사들과 제노바의 석궁 용병 등을 집결시켜 영국군의 뒤를 추격했다.

8월26일 크레시에서 영국군을 포착한 프랑스군은 기사들의 강력한 공격력과 3:1의 수적 우위를 믿고 공격을 감행한다.
 
 
영국의 장궁.


하지만 영국군의 장궁 앞에 기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장궁의 파괴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화살은 기사와 말을 동시에 꿰뚫었다. 오후 4시부터 한밤중까지 15차례에 걸친 공격은 모두 실패했다. 영국군은 250여명이 전사한 반면 프랑스군은 1만여명. 제후 12명을 포함해 기사 1542명도 전사했다.

이 전투는 군사‧정치적 측면에서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제후가 기사들을 모아 국왕에게 바치는 영주제도의 군사제도는 무력화됐고, 평민을 중심으로 한 저비용 상비군이 등장했다. 전쟁 비용을 대느라 세부담이 커진 농민들은 프랑스의 자크리 폭동, 영국의 와트 테일러 반란 등을 일으키며 민권의식을 키웠다.

▲ 한 장관 “미래전 승리 조건은 ‘개념+과학기술’” 

한민구 장관은 지난 19일 대통령 신년업무보고와 21일 조찬강연회에서 크레시 전투를 ‘창조국방’ 개념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한 장관은 “크레시 전투는 과학기술과 앞서가는 개념을 융합한 능동적 변화의 성공 사례”라며 “개념과 과학기술이 융합할 때 미래전에서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지적은 우리 군이 무기 도입이나 기술 개발 위주의 군사력 건설에 치중한 나머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군사 개념 발전에는 소홀했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KF-16 전투기 편대.


과거 우리 군은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입체고속기동전’ 등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상전 위주의 전략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후 200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네트워크 중심전’(NCW)이나 ‘효과기반작전’(EBO) 등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군 연구기관들을 중심으로 이를 한국 실정에 접목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세계 전역에서 작전을 펼치는 미군의 개념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예산과 인력이 소요되는 부작용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 창조국방, 성공할 수 있을까

한 장관은 28일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조찬강연회에서 “장관이 선두에 서서 합참, 각군 본부와 협업을 통해 창조국방을 시작하려고 하며 국방부 중심으로 창조국방 개념 기획부서를 운영할 계획”이라며 “작전사령부 이하 부대에서는 창조국방과 관련 없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3월 말 창조국방 추진 개념을 구체화하고 6월에는 민간 전문가, 자문회의, 정책회의를 통해 과제를 선정해 6월에서 11월까지 소요 예산을 반영해 시행할 것”이라며 “연말에는 추진 성과를 평가하고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들은 창조국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 군사전문가는 “일선 부대는 전투준비에 전념하고 수뇌부급이 창조국방을 구체화하는 ‘선긋기’는 매우 적절한 조치”라며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연구와 토의를 진행하는 것도 의미있는 조치”라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교는 “창조국방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정권이 바뀌고 나서 후속조치가 유야무야 되어버리면 안한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무적을 자랑한 독일의 전차군단과 1차 걸프전 당시 미군의 승리는 15년 동안 개념과 기술연구에 몰두한 결과다.

따라서 정치적 환경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는 군 수뇌부의 추진력이 뒷받침되어야 창조국방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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