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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2월호 안보논단]평화와 전쟁의 알레고리, 올림픽

2018.02.26 Views 1693 관리자

올림픽, 평화와 전쟁의 알레고리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평창 동계올림픽이 눈앞에 다가왔다. 가장 염려되었던 북한의 참가 문제도 해결되었다.지난 9일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북한대표단의 참가가 확정되면서 한시름 놓은 분위기다. 북한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성공적인 개최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참가함으로써 세계인의 평화축제로서 올림픽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계올림픽은 1924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올림픽의 기원은 서기전 776년으로 올라간다. 그 이후 4년마다 열린 올림픽은 1,500년이나 지속되었다. 고대 올림픽은 중단된 것은 서기 후 393년으로, 당시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남작에 의해 근대 올림픽이 개최된 1894년이니, 1,500년만에 부활한 셈이다.

  올림픽 휴전의 의미

올림픽이 평화를 상징하게 된 것은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에서 휴전’(Olympic Truce)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는 많은 도시국가들의 세계였다. 그리스 신화와 언어는 함께 사용했지만 사실상 개별 국가였기 때문에 도시국가들 간의 협력만큼이나 대립과 갈등도 많았다. 도시국가들의 갈등을 중재할 국제기구도 없었고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도 없었기 때문에 사소한 분쟁도 도시들 간의 전쟁으로 비화되기 일수였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분쟁이 발생하면 전쟁을 통해 해결하는 경향이 많았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로 되지 않으면 전쟁을 통해 신의 뜻을 물었다. 전쟁의 결단을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이 약하다고 해서 힘 센 나라에 양보하는 것은 비굴한 일로 간주했다. 전쟁이 나면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거나 방패에 실려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모든 시민은 전사(戰士)였다. 자신의 비용으로 무장을 하고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사람만이 시민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부여받았다. 여성이나 외국인, 노예가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무엇보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중시했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한 명인 아이스킬로스(Aeschylos)는 그의 묘비에 마라톤전투와 살라미스해전에 참전했다는 사실만 남겼다. 위대한 작가로서의 삶보다 한 명의 시민으로 전쟁에 참전한 것을 더 의미 있는 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민-전사들 간의 경쟁과 만남의 장

여성이나 노예가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다. 기본적으로 올림픽은 시민-전사들 간의 경쟁의 장이자 만남의 장이였다. 그들은 5일간의 올림픽 기간 중에 각종 경기에 참가하면서 기량을 겨루고 우의를 다졌다. 이들이 만나는 경기가 올림픽만 있는 게 아니었다. 델파이나 코린토의 이스무스(Isthmus of Corinth), 그리고 네메아(Nemea)에서도 그리스인들이 참가하는 경기(Panhellenic Games)2년이나 4년 주기로 열렸다.

그들의 전쟁방식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당시 전쟁은 팔랑크스(Phalanx)라 불리는 시민전사로 구성된 밀집보병대형으로 싸웠다. 맨 앞 열에 나서서 상대와 힘 싸움을 벌이는 이들은 대부분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이었다. 미식축구와 비슷한 전투방식에서 전열(前列)의 전투력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경기종목도 당시 전사의 능력을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달리기와 창던지가, 권투와 레슬링, 판크라티온(Panklation)이라 불렸던 사실상 격투기, 그리고 전차경주에 이르기까지 전쟁수행과 무관한 것이 없다. 도시국가 전사들은 올림픽과 같은 경기를 통해 서로의 기량을 겨루며 일상적인 전투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경기장에서 경쟁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성기 때 올림픽은 5일간 진행되었고 3일째 되는 날은 축제일이었다. 100마리나 되는 소가 제우스신의 제물로 바쳐졌고 올림픽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나누어 먹으며 축제를 즐겼다. 올림픽은 치열한 경쟁의 공간이지만 서로 간에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우의의 공간이기도 했다.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당시의 전투양상을 감안할 때, 이들 간의 우의는 전장에서 평화로운 화해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명예롭게 싸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 기간 동안의 휴전은 중요했다. 거의 3백 개 이상의 도시국가가 난립해 있었던 지중해는 크게 작은 분쟁으로 늘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올림픽 기간만큼은 휴전이 선포되었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가혹한 벌금을 내렸다. 서기 전 42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었다. 올림픽 휴전이 선포되었지만 스파르타는 급히 1천명의 중갑보병을 기동시켰다. 아테네 해군을 막기 위해서였다. 법에 따라 한 명당 200 드라마크씩 모두 200,000드라마크가 벌금이 부과됐다. 1드라마크는 당시 숙련된 장인의 하루 일당이라고 하니 적지 않은 벌금이 책정된 셈이다. 스파르타가 휴전 선포 전의 일이라며 납부를 거부하자, 올림픽 주최 측은 그들의 출전자격을 박탈했다. 당시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그리스에서의 패권을 다투던 최강국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올림픽 휴전이 얼마나 강력하게 실시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평화 속에 전쟁을 대비하다

올림픽의 평화는 어떤 점에서 당시 그리스의 복잡한 안보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수백 개의 도시국가로 각자도생(各自圖生)하던 시절, 잠시나마 평화를 강요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은 평화와 전쟁의 이율배반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올림픽은 출전자격이나 경기종목에서부터 시민-전사의 훈련과정이었고 서로간의 전력을 탐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울러 갈등과 분열을 넘어 서로간의 우의와 협력, 평화를 확대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이러한 전쟁과 평화의 알레고리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수차례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한반도를 핵전쟁의 위협으로 내몰고 있는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올림픽에 내재된 전쟁과 평화의 역설적 관계를 잘 보여준다. 북한의 참가결정은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다. 선수단뿐만 아니라 응원단과 예술단, 그리고 관람객까지 참가한다고 하니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 또한 고양되는 듯하다. 문제는 그렇다고 북한의 도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00년 이후 스포츠를 통한 남북한이 하나 된 모습을 연출했지만 한반도 안보상황은 더 나빠졌으면 졌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평화를 꿈꾸었지만 역설적으로 전쟁을 대비했던 고대 올림픽의 역사가 평창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 평화와 전쟁이 교직하는 한반도의 운명과 고대 올림픽의 정신이 묘한 일치를 이루기 때문이다. 오는 2월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리는 2018 동계올림픽이 세계인이 염원하는 평화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빛나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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