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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3월호 권두언] 독립운동가 발굴과 포상, 국가 보훈의 첫 걸음이다
2018.04.03 Views 1562 관리자
독립운동가 발굴과 포상, 국가 보훈의 첫 걸음이다!
이준식(독립기념관 관장)
국가 보훈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 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어 나라에서 유공자나 그 유족에게 훈공에 대한 보답을 하는 일”이다. 국가 보훈이야말로 한 나라가 나라로 존재할 수 있는 기본적 출발점이다.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을 기리고 보답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누가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쳐가면서 나라를 지키거나 되찾기 위해 싸우려고 하겠는가? 당연히 기리고 보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을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독립유공자의 경우 그 범주가 현실적으로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일제의 국권 찬탈과 선열의 독립운동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 이후 한반도는 일제에 의해 강점되었다. 일제는 을사늑약, 정미칠조약 등을 강요한 뒤 명목만 남은 대한제국을 대신해 사실상 한반도의 주인 노릇을 했다. 그러자 나라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움직임도 거세게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해 일제와 전쟁을 벌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계몽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힘을 길러 일제에 맞서려고 했다. 그러나 의병전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끝에 의병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계몽운동도 일제 강점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리하여 1910년 대한제국의 주권은 일제에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다. 대한제국의 신민은 어느 날 갑자기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많은 선각자가 강제병합을 전후해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벌여나갔다. 국민주권을 표방하는 임시정부 수립운동과 병행해 열강을 상대로 한 외교운동이 벌어졌고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는 독립군에 의한 무장투쟁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국내에서도 3·1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같은 대규모 대중투쟁이 일어났고 노동·농민·여성·소년·형평운동 등의 부문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10년대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수많은 비밀결사가 꾸려져 일제에 대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은 의열투쟁은 늘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과 독립운동
독립운동 과정에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를 통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 출범한 것이다. 독립운동은 한편으로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자주독립의 민족혁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주독립을 이룬 뒤에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민주혁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주독립과 민주공화국을 위해 많은 사람이 기꺼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무명의 독립운동가가 더 많은 현실
나라 안팎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는 수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될 때 국내에 거주하던 우리 민족의 인구가 2천 5백만 명 남짓이었음을 감안할 때 엄청난 숫자이다. 보기를 들어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만 해도 백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만세시위 참여자의 전체 명단을 알지 못한다. 이는 3·1운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독립운동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독립운동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독립운동가는 구체적인 이름이 아니라 단지 명수로만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독립운동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17년도 광복절 경축사는 여러 모로 뜻이 깊었다. 특히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 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 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 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 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 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독립운동가의 어머니, 야학 선생님, 쌈짓돈을 보탠 분’ 등이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상징한다면 ‘이태준, 장덕준, 남자현, 김용관, 나운규’는 이름을 남긴 독립운동가를 상징한다. 다시 구체적으로 이름이 불린 5명 가운데 이태준, 장덕준, 남자현, 나운규가 이미 대한민국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포상이 된 독립운동가라면 김용관은 아직 독립유공자로 포상이 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라는 차이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굳이 아직 포상이 되지 않은 김용관을 독립운동가의 대표적인 보기로 거론한 것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거론한 것과도 관련해 독립유공자 포상정책에서 중요한 전환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독립유공자로 포상이 된 독립운동가는 모두 14,764명(외국인 69명 포함)에 이른다. 많다면 많은 숫자이지만 거의 반세기에 가깝게 전개된 독립운동에 참여한 전체 독립운동가 숫자에 비추어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의병전쟁에서 희생된 의병,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희생된 독립군,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의 희생자 등만 해도 최소 몇 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우리는 아직 희생자들의 이름조차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의 훈격은 원칙적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이다. 말하자면 수만 명에 이르는 건국훈장 서훈 대상자가 존재하는 셈이지만 이름조차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무명의 독립운동가에 머물고 있다.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특징은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기 시작한 이래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 어느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이 벌어졌으며 일부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형태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부 이름 있는 애국지사 중심으로 독립운동사를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3·1운동 하면 손병희나 유관순, 임시정부 하면 김구, 만주의 무장투쟁 하면 홍범도나 김좌진, 의열투쟁 하면 안중근이나 윤봉길을 바로 떠올린다.
물론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는 것은 그만큼 독립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음을 의미할 터이니 유명한 독립운동가를 많이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 가운데는 이름 석 자도 제대로 기록에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해외 무장투쟁과 국내 대중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이전의 무장투쟁이 한 곳으로 흘러들었고 이후의 무장투쟁이 한 곳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평가를 듣는 신흥무관학교(1911년 설립)를 거쳐 간 독립운동가는 3,500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그 가운데 단지 1할 안팎만 이름이 확인될 뿐이다. 3·1운동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피를 흘린 사람들은 사망자 6천 명 이상, 부상자 1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이름이 기록된 경우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독립운동가 관련 발언은 아직도 15,000명 미만에 그치는 독립유공자 포상을 대폭 확대하라는 뜻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 무공훈장, 근정훈장 등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전체 서훈 건수는 72만 건 정도이다. 이 가운데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이 10,000건 남짓(건국포장과 대통령표창 제외)이니 전체 서훈의 2%가 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바쳐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이루려고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전체 규모에 비추어볼 때 현재의 포상 건수에 만족할 수는 없다.
독립운동, 대한민국의 뿌리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이 문장은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의 기반 위에서 출범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곧 독립운동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뿌리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독립운동으로 비롯되었기에 현재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를 독립유공자로 포상하고 있다. 독립유공자가 받는 훈장과 포장의 이름도 건국훈장이고 건국포장이다.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독립운동가에게 ‘건국’의 공로에 상응하는 예우를 해야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책무이다.
독립운동가의 발굴과 포상, 대한민국의 책무
따라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을 대폭 늘려야 한다. 기존 포상기준에 맞는 독립운동가를 새로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분명히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기존 포상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지 못한 경우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도 필요하다.
정부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2019년을 맞아 독립유공자에 대한 대대적인 포상 작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일제에게 빼앗길 위험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쳐 싸운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포상하는 것, 그리고 역사에 기록하고 영원히 기억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의 책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