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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6월호 호국보훈의 달 특집] 호국정신의 표상,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을 돌아보고

2018.07.12 Views 1358 관리자

호국정신의 표상,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을 돌아보고

  이정구
예)육군대령

어느 따스한 봄날, 포항지역전적지를...

포항지역 전적지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당시 학교에서 수도산(水道山, 모갈산 茅葛山, 77.9m)일대 정화활동을 하기 위해 전적비 일대를 둘러본 적이 있다. 얼마 전 군 생활을 마무리한 시점에 40여 년 전에 들렀던 곳을 이번 기회에 여유를 가지고 학도의용군들이 참전한 전적지를 두루둘러 보고 싶은 마음이 불현 듯이 났다. 아침 일찍부터 들뜬 마음으로 답사준비를 하였다. 엊그제는 지역 내 가뭄이 심한 가운데 봄비가 제법 내렸지만 오랜만에 아침부터 하늘은 파랗게 물든 화창한 날씨였다. 대구를 출발하여 여유 있게 국도(4~28)로 경산, 하양을 거쳐 6·25전쟁의 가장 빛나는 승리를 가져온 영천대첩(195094~1950913)’의 고장인 영천 시내와 영천국립호국원’, 안강, 양동마을 앞을 지나 드디어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에 도착하였다. 

대한민국 유일의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이 곳은 전국에서 하나뿐인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으로 19506·25전쟁 당시 희생된 이름 없는 학도병들의 애국심과 고귀한 넋을 기리고, 전쟁의 역사와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전쟁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포항시에서 20013월부터 20027월에 이르러 건립한 곳이다.

우선 기념관 입구에 비치된 방명록을 작성한 후 1층 전시관(이미지 상징공간, 도입공간, 전개공간, 승화공간)을 둘러 보았다. 학도의용군 전사자 명단, 참전용사의 유품, 학도의용군의 연혁, 그리고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학도병으로 참전해 포항여중(현 포항여고)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의 주머니에서 나온 생전에 모친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 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안녕! ,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가슴이 저미어 온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전시관실에는 올 4월에 새로 마련한 6·25전쟁 당시 학도의용군 포항여중전투 장면을 묘사한 디오라마-배경위에 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든 것-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학도의용군포항지회 생존자 증언 영상물을 잠시 동안 시청하고 2층으로 올라가보니 복도에는 학도의용군의 활약상에 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청각시설세미나실이 설치되어 충··예 실천운동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풍전등화의 조국! 교복을 입고 소총 한 자루로 막아낸 그 혈기와 희생!

2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난 후 기념관 운영사무실에 들렀을 때, 마침 기념관에서는 연세가 지긋하신 열분 정도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이분들은 포항지회 학도의용군으로 월례 모임 중이었다. 다행이 월례모임이 바로 끝나서 대한민국학도의용군 포항지회 회장(1929년 생, 김문옥)님을 잠시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되어 68년 전의 감회와 학도의용군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학도의용군이 처음으로 조직된 것은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629일 서울 시내 각급 학교의 학도호국단(1950422일 창단) 간부 학생 200여 명이 수원에 모여 비상학도대를 결성한 것이 그 출발점이 되었다. 대전에서는 그해 71일 부로 대한학도의용대를 새로 조직하고 실전에 참여하였으며, 여기에는 어린 중학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생층이 망라되어 있었고 여학생들도 간호원으로 출정하였다. 포항지역전투에 참가한 학도의용군(學徒義勇軍)의 모체는 1950717일 대구역일대에서 대구 전국학련구국대로 발족하여, 2~3일 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언제든지 투입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방어하고 있던 육군 제3사단 소속 학도의용군으로 포항여중(현 포항여고, 3사단 후방지휘소)에서 단독으로 전투에 참전하여 48명이 산화(부상자 13, 포로 10)하고 지금은 20여 분만이 생존해 있다.

감회가 새로워서인지 상기된 얼굴로 당시를 회고하시면서, 증언을 이어가셨다. 학도병들은 당시 대구역 부근에서 집결하여 전투에 투입할 준비를 하다가 810일 이른 새벽에 포항지역으로 이동하여 22시경에 M1소총과 개인당 실탄 250발을 지급받고 24시 경에 취침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녘에 기습적으로 공격한 적(5사단 및 766유격대)을 격퇴시키기 위해 새벽 4시경 시작된 치열한 전투는 오후 3시까지 이어졌다. 이후 살아남은 학도병들은 학교 앞으로 흐르는 학산천 도랑을 따라 이동하여 학산다리(포항여중 인근)에서 전투를 치르고, 칠성천 죽도다리에서 서부청년단 및 3사단 23연대, 수도사단 경찰병력과 합심하여 시가전을 하면서 200여명의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당시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전차를 동반하여 남하하던 북한군의 주력을 포항의 관문인 포항여중 일대(나루끝, 포항진浦項津의 끝명칭)에서 저지 및 지연시킴으로써 포항 시민과 피란민 약 20만 명이 형산강 이남으로 무사히 탈출 시킬 수 있었고, 3사단의 보급품의 안전한 이송과 주요 행정문서를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 더욱 의미가 큰 것은 후방의 국군도 반격을 위한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 만약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던 낙동강 방어선은 동해안부터 붕괴되었을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호국정신 교육의 요람,‘전승기념관주변 지역

기념관이 위치한 이 곳 탑산(죽림산)에는 생존해 계시던 포항지역 학도의용군들이 1979년부터 터를 잡고, 학도의용군 전적물 보존과 추념행사 및 현지 안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유치원생을 포함한 초중고등학교학생 및 일반인들이 매년 28천 여 명씩 전승기념관과 주변(포항지구전적비, 전몰학도충혼탑), 그리고 기념관에서 동북쪽으로 1km남짓한 수도산(모갈산)에 위치한 포항시충혼탑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 당시 치열한 격전을 치루었던 포항여고 입구에 설치된 學徒義勇軍 六二五 戰跡碑 등을 둘러보고 국난극복을 위한 호국정신과 희생정신, 구국정신을 되새기는 역사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회장님의 상기된 얼굴을 뒤로하고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우선 기념관 바로 뒤편에 위치한 포항지구전적비전몰학도충혼탑을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인 수도산(모갈산)으로 향했다.

 

전승기념관에서 5분여 거리에 위치한 수도산(모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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