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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9월호 안보논단]인천상륙작전의 의의 및 교훈
2018.11.19 Views 1767 관리자
인천상륙작전의 의의 및 교훈
김현기 (해병대전략연구소 이사, 국제정치학 박사)
전쟁에서의 기습은 궁극적인 승리까지는 보장할 수는 없겠지만 전장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주도권의 확보에는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은 상륙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천연적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성공한 상륙작전의 가치와 기습의 의미를 일깨워준 대표적인 작전이다. 이는 과도하게 신장된 공산군의 병참선과 낙동강 방어선의 교착상태를 돌파하여 지상공격시 감수해야 할 인적․물적 자원의 손실 방지와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이고 상대적으로 종심에 비해 정면이 협소한 전장의 지형적 특성 등의 전략적 요소와, 태평양 전쟁시의 미 해군 및 해병대의 상륙작전 경험과 능력을 맥아더 장군 자신의 전략적 안목으로 집약시켜 적의 최소 예상선과 최소 저항선에 군사력을 투사시켜 결정적 승리를 달성한 작전이었다.
상륙작전의 경과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최초지시는 9월 9일 하달되었으며, 선견부대 작전은 9월 4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인천 중심 반경 50km이내의 도로, 교량, 터널, 철도 등 교통 요충지를 차단하여 상륙지역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항공폭격과 기만 및 양공작전을 실시하였고 월미도에 대한 제압사격은 13일부터 2일간 이루어졌다. 상륙돌격은 녹색해안인 월미도에 9월 15일 06:30분에 미 해병대 제 5연대 3대대가 한국 해병대 1개 중대를 배속 받아 항공․함포사격의 엄호 하에 돌격을 감행하여 08:00시에 소월미도를 포함하여 완전 점령하였다. 적색해안인 인천북방은 17:30분에 한국 해병대 제 3대대를 배속 받은 미 해병대 제 5연대와 한국 해병대 제 1연대 2개 대대가 상륙하고 청색해안인 인천남방은 17:30분 미 해병대 제 1연대가 상륙하였다.
16일 01:30분 인천중심 48km의 광범위한 해안두보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약 2,000명 정도의 적을 소탕하였고, 상륙군의 피해는 경미하였다. 후속부대인 미 육군 제 7사단, 미 해병대 제 7연대, 한국군 제 17연대는 초기의 돌격제대가 해안두보를 확보한 후 김포공항 및 영등포로 진격하는 동안 상륙하였으며, 상륙작전의 종료는 21일 18:00시 제 10군단 전투지휘소가 해안에 설치된 후 연합상륙기동부대의 해체와 함께 종료되었다.
상륙작전의 의의
인천상륙작전과 경인지구 작전을 통해 미 제 10군단이 입은 손실은 약 4000여 명 정도였으며, 북한군이 동 작전기간 중 직접적으로 입은 피해는 약 2만여 명 정도이며, 동 작전과 관련하여 북한군이 남한지역에서 입은 피해는 포로가 약 13만 5천명, 손실이 약 20만 명으로 동 작전이후 북한군의 전력은 실질적으로 격파되어 공격능력을 거의 소멸하였던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전쟁사적 의의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전쟁의 주도권 전환으로서 대 우회기동을 통한 기습으로 적의 병참선을 차단, 적에게 물리적․심리적 교란효과를 달성하여 적의 전투의지를 파쇄시킴으로서 공세이전의 계기가 되었다. 둘째, 유엔군의 인적, 물적, 시간적 손실을 최소화 점을 들 수 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지상반격작전을 감행하였을 시 북한군은 금강선, 천안-장호원선, 한강선, 38도선의 최소한 5개 지연진지상에서 축차적으로 조직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어 약 10만명 이상의 유엔군 손실과 수많은 민간인의 학살을 예상할 수 있었다. 셋째, 전략적 대포위기동의 대표적 전례가 되었다는 것과 이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지휘관의 전략적 식견과 미 해군 및 해병대의 전문화된 상륙전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륙작전의 교훈
인천상륙작전의 교훈은 여러 가지 형태로 분석이 가능하나 본고에서는 주로 전쟁지도와 작전전략 위주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전쟁의 원칙을 적용한 군사적인 승리를 들 수 있다. 목표의 원칙면에서 맥아더는 적의 군대를 격멸하고 적의 전투의지를 파쇄하기 위한 전쟁에서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군산을 선호하는 미 합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적의 포위와 병참선 차단이 가능하고 수도 서울을 조기에 탈환하여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는 인천을 상륙지역으로 선정하였다. 공세의 원칙면에서는 아군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작전행동을 위해 적의 약점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행동을 통하여 국지적 우세를 전체로 확대하여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조기에 유엔군의 공세이전을 가능하게 했던 점이다. 집중의 원칙면에서는 결정적인 승리를 달성하기 위하여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전투력을 집중하므로서 달성 가능하다. 맥아더는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위급성에도 불구하고 적의 측․후방에 전투력을 집중하기 위해 전략적․작전적 차원에서의 적절한 절약을 통하여 이를 가능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기동의 원칙면에서 적의 병참선과 후방경계의 취약점을 이용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적보다 유리한 위치로 이동하여 기습과 집중으로 인천과 수도서울을 탈환하므로 서 결국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여 주도권을 확보하므로 서 작전의 성공을 달성하였다.
둘째, 우수한 인력과 부대의 양성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지적한 전장은 우연성과 개연성이 존재하므로 군사적인 천재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안개와도 같은 전장상황을 정확히 판단․예측하여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휘자의 능력과 불확실하고 극한적인 전장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훈련된 우수한 부대는 승리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시의 고급인력에 대한 양성과 강인한 훈련 및 실전경험에 의한 수준 높은 전투력의 배양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셋째, 상륙작전 측면에서의 제해권과 제공권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북한군의 해양력 부족은 인천이 상륙지역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동기를 제공하였으며, 상륙작전 실시의 초기단계간 중요한 위협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는 해안두보내로의 적 기갑 및 기계화 부대의 증원에 대해 제공권의 보유는 이를 적절히 차단시킬 수 있게 되어 중무장한 후속부대의 상륙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상륙작전계획 자체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다. 작전 동기와 배경은 지휘관의 우수한 혜안이 돋보이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계획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성공은 했지만 희박한 성공 가능성과 불충분한 준비는 전쟁전체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종의 도박에 가까운 모험인 것이다. 만약, 북한군이 유엔군의 상륙지역을 정확히 판단했거나 또는 상륙작전이 부분적인 성공에만 거쳤을 경우는 한국전쟁의 전쟁사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다섯째, 상륙작전의 수단과 방법의 문제로서 파괴력이 크고, 정밀공격이 가능한 시대에 상륙부대와 함정의 집결은 좋은 표적이 되어 해상제대(sea echelon)개념이 필요하며, 헬기를 이용한 수직포위 개념을 탄생시켰으며, 암벽 및 부적합한 해안에 대한 접안 및 하역이 가능하도록 하는 수단의 모색, 그리고 장차 상륙작전 가능지역에 대한 전술정보 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은 작전 자체의 성과보다는 이후의 피․아 작전에 미친 영향에서 더욱더 전쟁사적인 의의를 갖는 작전이었다. 과거 세계의 수많은 상륙전사를 보더라도 인천상륙작전 만큼 전쟁의 행위자와 전쟁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 작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들은 기습효과 달성을 통한 적의 전투의지에 대한 파쇄와 상대국 전쟁지도부의 성향, 그리고 언제든지 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해․공군 세력의 불균형, 전장의 지리적 특성이 상호 결합되어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이 낙동강 전선에서의 적의 패주와 패주시 나타났던 조직의 와해는 기습적으로 실시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1차적인 심리적 충격의 효과와 수도탈환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 그리고 적의 병참선과 퇴로를 차단당함으로서 배가된 2차적인 심리적 충격이 기하학적으로 상승되었기 때문이며, 이후 중공군의 개입 시에도 나타났던 대상륙방어에 대한 강도는 또다시 유엔군으로 부터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당할 시 겪게될 전투의지 파쇄에 대한 우려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구 1천만이 넘는 거대도시 서울에 살면서 한국전쟁기간 중 주인이 4번씩이나 바뀌는 동안 초토화된 바 있으나 이제 세계유수의 빌딩숲을 이루게 된 것을 경탄하기도 하지만,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면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불과 26명에 불과한 북한군 특수요원이 잠수함으로 침투하자 이들을 소탕, 추적하느라고 무려 7개 사단이 동원, 투입되어 거의 한 달이나 작전을 했으나 오히려 아군과 민간인의 사상자 다수를 내면서 작전을 종결지었다. 오늘날의 우리 국민들은 수도탈환 당시의 해병대원들의 그 용맹성과 기지를 부러워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총체적인 국가안보가 위기에 처하여 군의 전투력과 국민의 전의를 우려하면서 중국 고대병법에 나오는 다음 한마디를 꼭 되새겨야 할 것으로 믿는다. `好戰必亡 忘戰必危`(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