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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3월호 안보논단]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방향

2019.05.17 Views 931 관리자

한일관계 난기류와 향후 개선 방향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1. 한일관계 난기류

최근 한일관계가 거친 난기류에 직면하고 있다. 201512, 당시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와 수차례 협상을 거쳐 위안부 현안을 풀어나가기로 한 합의사항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족한 TF의 조사 결과, 피해자의 입장을 도외시한 졸속 합의였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사업을 실시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거출한 10억 엔(100억 원 상당)의 기금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던 화해치유재단에 대해서도 해산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같은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양국간 합의를 변경하는 것이 상호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불편한 반응을 숨기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20181030,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기업에 의해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이 해당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일본 기업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 원 상당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같은 대법원의 결정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한일간 청구권협정 체결로 인해 한국 정부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대일 손해배상 청구권도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양국이 합의한 기본 전제를 뒤엎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양국이 구축해온 우호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뒤엎는 것이라는 거친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양국간 청구권 협정에 기반하여 협의를 신청하거나, 경우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181220일에는 동해상의 공해에서 북한 어선에 대한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던 한국 해군의 구축함이 근처 상공을 비행하던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P1 초계기에 대해 사격관제레이더를 조준했다는 비판을 일본 정부가 일제히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 국방부는 우리측 구축함이 북한 선박 탐지 등을 위해 전자광학 추적장치는 사용했으나, 군사적 위협으로 여겨지는 사격관제 레이더는 사용한 바 없다는 설명 자료를 제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여당 자민당은 한국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2. 양국관계 난기류의 원인

이같이 최근 한일 간에 위안부 관련 기금의 해산이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판결과 같은 역사 문제 뿐만 아니라, 초계기 논란과 같은 안보분야에서도 갈등현안들이 발생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첫째, 촛불혁명에 의해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가 과거와는 다른 정책패러다임으로 외교현안들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우선 지적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에 의해 행해진 정책적 오류들, 소위 적폐에 대한 청산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201512월에 이루어진 양국간 위안부 합의 등을 적폐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조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국제정치상의 규범 보다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기존 한일간 외교적 합의에 대해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연관되는 것이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다수를 점하게 된 한국 사법부도 한일병합이 불법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 기업에 의한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피해배상의 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관점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소송에 적용하고 있다.

둘째, 일본 아베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종전 일본 정치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라는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 하에서 냉전을 승리로 이끈 대국이며, 앞으로도 미국은 물론, 인도, 호주,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과 국제사회의 중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글로벌 플레이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역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한국 정부가 대외정책에서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2018년 공표된 방위계획대강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호주나 인도, 심지어 동남아 국가보다 낮게 보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양국간 정책패러다임의 차이로 인해 한국은 이전 정부에서 일본과 합의를 이루었던 위안부 및 화해치유재단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렸으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서도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의 입장을 번복하여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조치가 기존 외교상의 합의를 뒤엎는 파격이라고 간주한 일본은 초계기 문제에 대해 과잉반응을 보이면서 한국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양국의 정책 패러다임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한일관계 난기류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3. 한일관계 회복의 필요성과 방향

그러나 한일관계 악화는 무엇보다 한국의 국가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두가지 사례를 제시해 보겠다. 우선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기로 한 결정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란 북한의 비핵화 및 정상국가화 달성을 통해 남북 간에 군사대립도 완화하고, 신뢰구축도 도모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 정상화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미 북한과 일본은 20029, 당시 고이즈미 수상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평양선언을 통해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추진해 가며, 이 과정에서 상호 재산청구권을 포기하고, 일본이 북한에 대해 무상자금협력을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도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유의하면서 향후 북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에 대해 북한 지역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을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경우 북일 국교정상화가 지체되는 등 암초에 걸릴 가능성이 다분하고, 이 경우 일본이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무상경제지원 등에도 지장을 초래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전반에도 차질을 줄 수가 있다.

한일간 초계기 논란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동되어 왔던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 균열을 불러 올 수 있다. 이번에 논란의 대상이 된 P-1 초계기는 기존 P-3C 초계기를 대체하여 일본이 독자 개발하여 2013년부터 실전 배치한 기종이다. 필자가 지난해 일본 동경 근교의 아츠기 기지를 직접 방문해 해상자위대 관계자들로부터 설명받은 바에 의하면, 이 초계기는 동 기지에서 발진하여 우리 동해 상에서 북한의 잠수함 동향을 탐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군사정보는 GSOMIA 협정에 의해 한국 및 미국과 공유되고 있다. 그런데 초계기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 한미일간 정보 공유에도 차질이 생기게 되고, 이는 잠재적 위협에 대한 억제태세의 약화를 가져 올 수 있다. 또한 유사시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불가결한 우리의 입장에서 초계기 논란의 여파로 초래된 한일 양국 군 지휘관 및 부대의 상호 방문 등이 취소된다면, 안보태세에도 불이익을 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결정,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 P-1 초계기 논란 등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도 언젠가 부담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고, 기존에 구축되어온 한미일간 안보협력 체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그 부작용을 최대한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의해 물론 존중해야 할 가치가 있지만, 행정부로서는 이 판결이 대외관계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추진되었던 것처럼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등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지원 역할을 행정부가 의회와의 협조 하에 강구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초계기 논란에 대해서는 국방과 외교 등 양국간 실무회담을 가동하여, 초계기 논란의 발생 과정과 그 원인에 대한 솔직한 재검토를 행하고, 향후 이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 그 일환으로 20144, 한국과 일본이 각각 조인한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에 대한 규범(CUES)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같은 규범 재정립의 과정에 일본 뿐 아니라, 중국, 그리고 북한도 참가시켜 동아시아 해상에서의 상호 신뢰구축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인 북한의 비핵화나 중국의 강대국 부상 등에 대해 양국이 어떻게 공동대응할 수 있는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4. 3.1100주년을 맞이하는 자세

100년 전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 저항하여 거족적인 3.1 운동을 일으켰다. 물론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과 여타 민족에 대한 침탈의 역사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고, 그 재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일본이 지난 1945년 패전 이후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 하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해온 현대사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한국과도 1965년 국교정상화를 이룩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을 공유하면서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깊은 협력관계를 맺어온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북한의 비핵화와 보다 안정된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한일 양국의 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한 것처럼 비록 역사나 영토 문제 관련 갈등과는 구분하여 정치경제나 외교안보 면에서는 일본과의 협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3.1운동 당시의 독립선언문도 그 공약 3장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되,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선열들의 포용적인 정신을 계승하여, 보다 대국적인 입장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구축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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