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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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5월호 가정의 달 특집] 그대가 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2019.05.17 Views 1065 관리자
그대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남 윤 애
인천효성남초등학교 교장
“교장선생님, 하루 연가를 써도 될까요?”
입대하는 아들을 부대에 데려다 주고 싶다며 조심스런 얼굴로 김부장이 와서 묻는다. 평소 명랑한 표정을 잃지 않던 김부장의 얼굴이 밝지 않다. 사랑하는 아들을 고이 길러 그 어려운 고3 뒷바라지를 마치고 대학을 입학시켜 놓았는데 이제 군대엘 보내야 하니 마음이 복잡한 모양이다. 자식 뒷바라지가 끝이 없다.
교사는 방학 기간 외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가를 쓰기가 어렵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요즘은 문화가 변하여 입대할 때 부모가 동반하여 직접 훈련소까지 데려다 주고 입소식, 퇴소식도 가족이 함께 참여한다고 하니, 자식을 군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연가를 허락한다.
“튼튼하게 아들을 길러 나라를 지키는 자랑스런 현역군인이 되는데 다녀오셔야지요. 훈련소는 어디로 가나요?”
순간 김부장의 얼굴에 살짝 안도의 미소가 번지며 눈물이 글썽인다. ‘아이고 군대에 들어 가기 전에도 저렇게 눈물을 흘리니 어쩔꼬, 군대 들어가면 어떡하려고...’ 연가를 허락받고 짧은 대화 끝에 뒤돌아 교장실을 나가는 김부장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아들을 건강하게 기르려고 비싼 유기농 식품만 먹이고 길렀는데 커서 몸에 해로운 담배를 피운다고 너무나 속상해하던 후배의 모습이 겹쳐진다. 어려서부터 길러온 소중한 아들, 귀한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그런 아들이 이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군대를 간다니 어찌 걱정이 앞서지 않을까. 그동안 가끔씩 군대의 총기사고나 훈련 중 사고관련 뉴스도 있지 않았던가.
몇 년 전 멋진 군인이 나를 찾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제자였던 영민이다. 영민이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 멋진 바바리코트에 꽁지머리 헤어스타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입학 후에는 명랑하고 적극적인 성격과 엄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리더십을 발휘하며 각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고 성품마저 반듯해 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1학년을 멋지게 마치고 2학년으로 진급한 얼마 후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모자가 야반도주를 하여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엄마와 함께 두 식구만 살던 가정이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그토록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은 몰랐다. 여기 저기 아는 엄마들에게 빌린 돈이 많다고 했다. 우편함에는 밀린 청구서가 가득하고 그동안 관리비도 못내 난방과 전기도 끊긴 집에서 살고 있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잘 써오던 독후감상문은 책도 사지 못하고 인근 서점에서 눈치보며 읽고 작성한 것이었다니... 집은 얼마나 어둡고 추웠을까. 두 모자가 불도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에서 지내며 티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학교생활을 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가끔씩 생각 날 때면 가슴 한구석이 시려오는 잊지 못할 제자,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랐던 잊을 수 없는 제자 영민이었다. 그 제자가 외고를 나와 대학생이 되고 씩씩한 군인이 되어 엄마와 함께 내 앞에 나타났으니 정말 대견하고 가슴이 뭉클했던 시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엄마를 지켜주고 있는 영민이, 군대생활이 힘들지 않냐고 묻는 나에게 군대생활이 자기에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군 생활 동안 여러 가지 자격증도 따고 체력도 튼튼해졌단다. 너무나 감격해 눈물이 났다. 내가 영민이 모자를 생각했던 것만큼 영민이 모자도 첫 학교선생님이었던 나를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건강히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당부하며 정말 기쁜 해후의 시간을 보냈다.
‘군인아저씨!’
어릴 적에는 군인들을 그렇게 불렀었다. 위문편지도 보내고 위문품도 거뒀었다. 트럭 뒤에 타고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며 가는 군인아저씨들을 보면 막연히 설레고 듬직했었다. 누군가의 잊을 수 없는 제자이며 소중한 아들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하는 손자이며, 가슴에 사무치게 그리운 애인, 믿음직한 형, 귀여운 동생인 군인아저씨! 지금 보면 너무나 앳되고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20세 전후의 아름다운 청년들인 것을. 가장 빛나는 시기인 20대에 오롯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 내 가족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에 시간을 바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펄펄 뛰는 청춘의 피를 재워가며 살을 에이는 추위와 숨 막히는 무더위도 참아 넘기며 고된 훈련을 이기고 맡은 바 충실히 소임을 다하는 병사들이 있기에 그 가족들과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단잠을 자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니 정말 고마운 노릇이다.
시간이 흘러 퇴소식에 간다며 또 연가를 청하는 김부장이다.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목전에 두었으니 대견하면서도 걱정스런 마음이겠지. 선선히 허락한다. 지난번과는 달리 고마움을 눈에 담고 인사하며 돌아서는 뒷모습에 군인어머니의 씩씩함이 느껴진다. 퇴소식을 마치고 돌아온 김부장에게 어땠냐고 묻는다. 훈련을 마치고 까까머리에 군복 입은 아들을 보니 걱정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느새 이렇게 자라 늠름한 군인이 됐을까 하는 마음에 너무 장하고 자랑스러워 눈물이 나오더라며 이야기 중에 또 눈물을 글썽인다. 군대 생활을 해 본 것이 안 해 본 것 보다는 훨씬 낫다며 위로해주었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내 가족을 지키는 병사가 되어 복무하는 그 시간은 개인적으로는 극기의 시간이며 성찰의 시간이고 또한 애국 애족하는 시간이며 몸으로 가족을 지켜내는 시간이니 어찌 장하고 자랑스럽지 않을까.
얼마 뒤 기획위원회 회의를 끝내고 회식자리에서 마주 앉은 김부장에게 아들 군대생활 잘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잘 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아들이 잘 지내니 엄마 마음도 편안하다. 이제 주중에 외출도 나올 수 있고 일과 후에는 휴대폰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환히 웃는다. 아들이 씩씩하니 엄마도 아들을 닮아 씩씩한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 군복무 중에 전기통신 자격증을 따겠다고 했다며 자랑한다. 흐믓하다. 군복무의 의무를 다하며 여가시간을 활용해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다니 현명하다. 군복무 중에 자격시험에 응하면 모든 응시료를 면제해준다니 금상첨화에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이다. 김부장이 스마트폰을 꺼내 아들 사진을 찾아 보여준다. 군복 입은 모습이 멋지다. 씩씩하던 김부장이 사진을 보여주며 또 눈물을 흘린다. 나도 덩달아 콧등이 시큰해진다.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의 눈물과 기도, 또한 가족들의 사랑이 아들을 지켜줄 것이다.
제자 영민이, 김부장의 아들 승환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재상이, 규민이, 주남이, 종환이... 그대들이 있기에 가족은 단잠을 이루고, 그대들이 있기에 국민들은 일상의 평온을 누리며, 그대들이 있기에 발전하는 내 조국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우리 병사들 자부심으로 가득 찬 가슴을 활짝 펴고 오늘 하루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를 빌어본다.
교정을 둘러보다 보니 연산홍이 다투어 보라색, 진홍색, 흰색 꽃망울을 맺고 있다. 청춘의 꿈을 가득 머금은 우리 병사들의 모습 같다. 군 생활을 통해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더욱 튼튼해지기를, 격리된 외로움을 진로에 대한 숙고의 시간, 자기 발전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시간이 지나면 꽃망울이 꽃을 터트리듯 우리 병사들 아름다운 모습으로 청춘의 꽃을 활짝 피우기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