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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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5월호 가정의 달 특집] 여행 중에 만난 세계의 가족을 생각한다
2019.05.17 Views 1031 관리자
여행길에 만난 세계의 가족을 생각한다
전 운 성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행하면서 수려하고 웅장한 자연이나 인간이 만들어 낸 유적과 건축물 등을 구경하는 일 그 자체가 즐겁다. 그러나 이들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시인 정현종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고 읊었다. 이렇듯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어느 한 때의 스침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일어날 일들을 통째로 맞이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즉, 그의 일생을 마주대하는 일로 간주하면 실로 어마무시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패키지여행일 경우, 아무리 수만리 길의 먼 길을 다녀와도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 제대로 얘기를 나눈 상대는 아무리 헤어 봐도 한 손의 손가락에도 미치기 어렵다. 이는 같이 간 일행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기에 그냥 유적이나 구조물 등을 스쳐 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몇 해 전 배낭을 메고 페루의 이키토스에서 브라질 아마존강 최하구인 벨렘까지 배를 타고 내려가는 아마존강 횡단에 나섰었다. 이 때 각국에서 자유여행으로 온 가족단위, 부부, 형제자매 그리고 나홀로 여행자 등의 사람들을 만나 동행하면서 피를 나눈 가족의 끈끈한 정을 느꼈다.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배경에 대한 얘기를 통째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이 말한 그대로 어마무시한 일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개인 혼자 온 것이 아니라, 그들 등 뒤에는 엄청나게 숨겨진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류로 내려가면서 몇 차례 갈아 탄 여객선에 나 말고 한국인이 또 있을까 싶어 배 구석구석을 배회하였다. 추위 염려가 없는 적도선상의 강 위를 미끄러지는 배에는 칸막이 객실대신에 펑하니 넓은 빈 공간에 각자가 준비해와 걸은 놓은 수백 개의 해먹 사이를 엿보고 있었다.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해먹 안의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본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어른 한 사람이 들어가 누우면 적당한 해먹 공간에 꼭 끌어안은 젊은 부부, 젖먹이에게 젖을 빨려주는 엄마, 서로 등을 긁어주는 노부부 그리고 어떤 해먹 속에는 중년부부가 책을 보거나 조용히 담소를 나누거나, 잠을 즐기는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은 다름 아닌 가족의 면면이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아낌없는 미소를 보내주곤 했다.
이렇게 하류로 내려가던 중 배의 스큐류 고장으로 유서깊은 도시 산타렘에서 한나절을 보내야 했다. 선장이하 승무원들은 고장수리반과 몇 명의 당직자를 남겨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때 초등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온 백인이 나를 보더니, 반가운 듯 영어가 되느냐고 묻는다. 조금 된다고 했더니, 여기서 그냥 시간 보내지 말고, 이 근처 아마존강 유역에 몇 개 안되는 모래비치가 있으니 가자고 제안한다. 아까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고 있던 차에 잘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태리 출신으로 브라질 상파울에서 18세까지 살다가, 지금은 영국시민이 되어 런던으로 옮겨 가족과 함께 산다고 했다. 이곳에는 8세 된 아들과의 깊은 추억을 남기기 위하여 아마존강 투어를 왔다고 했다. 그는 영어는 물론 이태리어와 포르투칼어도 능숙하다고도 했다. 굉장한 구원자를 만난 셈이었다. 우리의 대화를 엿듣던 터키에서 온 50대 중반의 남자도 반가운 듯 함께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은 바로 국제곡물메이저인 카길사의 곡물 수집 및 저장과 수송을 하는 산타렘 터미널 앞이었다.
우리는 국립공원 지역으로 지정된 아마존강의 지류인 타파호스강의 모래비치 차오마을에 도착했다. 마치 가족이나 된 양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파비오라고 자신을 소개한 영국인 아빠는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했다. 아들도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고 했다. 그리고 서울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처럼 아마존강 유역과 남미여행을 하면서, 파비오 부자 외에도 아들이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 대학원에 입학한 기념으로 왔다는 폴란드인 부자, 아들이 밀라노 대학에 입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온 이태리인 부자 등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아내들의 배려와 격려 속에 끈끈하고 보이지 않는 부자간의 정과 믿음을 서로 주고받는 눈길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또한 상파울의 시내버스 안에서 군복무를 막 마치고 가족과 친척을 만나기 위해 왔다는 이스라엘 청년의 생기 찬 눈동자에는 그들 삶의 철학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모녀만의 여행객도 만났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베트남 하노이 사이의 산악도로를 잇는 국제버스에서 만난 몽골 모녀와 히말라야 마나슬루의 5,000m 이상의 고개를 같이 넘은 스웨덴의 모녀 등은 남편의 지원 속에 부자간 못지않은 소통과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마나슬루의 깊은 산간마을의 한 농가를 노크했을 때, 20대 젊은 처자의 슬피우는 이유가 아버지가 자신을 산너머의 나이 많은 남자에게 팔아버렸다는 얘기에 넋을 잃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객원교수 시절, 우리 앞집에 3형제를 둔 혼자사시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혼자인 할머니의 아들 내외들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말동무도 해주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등의 행동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에게조차 마음이 찡할 정도였다. 큰 아들은 워싱톤의 국방부에, 둘째 아들은 월마트에, 막내는 공무원이라 했다. 그들은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집 앞의 농구장에서 소리치며 농구를 즐겨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자랑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녀가 사랑했던 남편이 입던 속옷을 그대로 입고 다니며 생전의 남편자랑이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같이 쓰던 침실까지 보여주며, 남편의 사진이나 애용하던 시계, 운동기구 등을 그대로 보관하면서 마음속에 생전과 다름없는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생전에 얼마나 애뜻한 사랑을 나누었으면, 돌아가신지 퍽이나 되었건만 아직도 남편의 온기가 있다고 느끼고 계실까,,,
또, 나를 초청한 교수님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연구소내의 모든 이들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시간에 맞추어 집에 당도하니, 부인이 오래전에 타계하여 혼자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쩐지 좀 옷 매음새가 어색하다고 생각했었다. 돌아가신 부인을 생각하며 그녀가 쓰던 주방기구들은 물론 생전 그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많은 재혼 권유있었지만, 세상을 떠난 부인 생각에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생활이 비록 다소 불편하더라도 끝까지 사랑의 약속을 지키려는 애틋한 교수의 모습은 한 쌍 중 한 마리가 죽으면 혼자 살면서 끝까지 절개를 지킨다는 천년학이라는 불리는 두루미와 다름없었다.
이러한 부부간의 모습을 보며, 전남 소록도에 문둥병 걸린 남편과 같이 섬에 같이 들어가 병에 걸려 죽은 부인은 18명인 반면, 문둥병 걸린 부인을 따라간 남자는 아예 없었다는 얘기는 예사롭지 않았다. 과연 그게 나였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여기에 이미 많이 알려진 얘기이긴 해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부부이야기가 또 있다. 2005년 11월9일자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발행되는 록키마운틴 뉴스에 실린 글과 사진이 2006년도 풀리처상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잘 아는 것처럼 퓰리처상은 1917년 창설된 이래 미국 내의 언론분야, 문학, 드리마와 음악부문에 수상자를 선정하여 주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사진은 이라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미해병대의 보병소위 제임스 시신 앞에서 그의 부인 캐서린이 생전에 함께 즐겨 듣던 음악을 노트북을 통해 들으며,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녀 뒤에는 밤새 그녀를 부동자세로 지켜주는 미해병대원의 모습은 삶을 끝까지 같이 못하는 이들 부부에 대한 진정한 군의 예를 다하고 있었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이는 남편과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부인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이루어진 일이었다. 나 자신도 해병대 중위 출신이라 더욱 애잔한 마음이 쉽게 잦아들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가 전장으로 떠나면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도 소개되고 있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할 말이 없네, 당신이 그리울거야
이 것 하나만은 약속할게, 집에 꼭 돌아 올거라고
내가 지켜줘야 할 당신과 태어날 우리 아기가 있으니까
그리고 넌 내 삶의 전부인거 알지
이러한 모습을 본 제임스 소위는 하늘 나라에서 미소 지었을 것이다. 자신을 이토록 사랑해 준 아내가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진한 사랑을 보면서, 남극과 북극해 위에 드러난 빙산의 끝 부분인 사람들의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는 사실에 익숙해져 대부분이 물속에 깊이 잠겨 보이지 않는 건전한 가정과 애절한 사랑의 빙산 실체를 잊고 있었다. 역시, 인간의 기본적인 뜨거운 가족애와 부부애 그리고 연인간의 사랑 등이 사회를 지키는 굳건한 반석이 받쳐주고 있음을 말이다.
이렇듯 세계를 다니며 만난 다양한 가족들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지만, 군에서나 대학에서 우리 대원들이나 학생들에게 버릇처럼 말하던 생각이 났다. 소대장이나 포병부대의 전포대장일 때 제대 신고를 받거나 대학에서 스승의 날 또는 졸업사은회 등에서의 인사말이다. 여러분이 오늘 제대 또는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어디서 무슨 일은 할런지 모르나, 무엇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일이다. 화목한 가정과 나라에 뭔가 기여하는 훌륭한 가장이 되어달라는 부탁하곤 했다. 사실 생각하면 훌륭한 가장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난감한 일이었지만, 세상을 주유하며 만난 가족들의 모습을 이끌어가는 평범한 일이 가장의 역할임을 알았다.
최근 가족을 둘러싼 문제는 고령화와 여성화 그리고 핵가족화였다. 그런데, 요즘 이외의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조부모가 자기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76%로 네 명 중 3사람이 여기에 동의했다. 조부모의 입장에서도 25%는 역시 손자가 가족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과거의 전통적인 가족개념과는 엄청 많이 변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의 원인으로는 핵가족화보다도 더 심한 핵분열 현상에 있다는 것이다. 즉, 싱글맘, 싱글대디, 미혼자, 전업주부, 다문화 가족, 이혼부부와 그 자녀 그리고 아이를 원치않는 딩크족의 출현이다. 앞으로 가족해체로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문한 많은 개도국의 경우에도 가족관계는 크게 변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교수 가정에 초대받아 방문했을 때, 그의 직계와 방계가족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는데 30여분이 걸릴 정도의 대가족이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러한 대가족제도는 이제 세계적인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은 가족성원이 집을 떠나, 이제는 지구상에 파푸아뉴기니 정글 등의 고립된 일부 지역에 남아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무튼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의 어린이날, 8일의 어버이날, 15일의 스승의 날, 20일의 성인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 거기에 금년 5월에는 부처님 오신 날도 있다. 다시 말해 5월은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을 재무장하는 달인 듯 싶다. 가족애, 부부애, 조국애, 연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을 보거나 현장에서 만난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던지 가족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애는 더하고 못함이 없음을 알았다. 그래도 감사한 일은 길고도 힘겨운 여행 속에 많은 다양한 가족의 도움이었다. 토마스 제퍼슨 미국 대통령의 건전한 가정은 건전한 사회의 근간이 된다는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