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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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6월호 호국보훈의 달 특집] 바다를 통해 본 호국보훈의 달
2019.07.01 Views 2118 관리자
바다를 통해 본 호국보훈의 달
호국보훈(護國報勳)의 의미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면서 그 분들에게 추모와 감사를 전하는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애국정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963년 호국보훈의 달이 설정되고 명칭의 변화는 있었지만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까지 매년 6월이면, 범정부적 차원의 호국보훈 행사가 실시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38선을 너머 남침함으로써 발생한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자아낸 참혹한 전쟁이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조언될 때까지 3년 동안 치러진 수많은 전투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전국토가 황폐화되고 지금도 남북분단과 이산가족의 아픈 상처가 남아있다. 국가공휴일로 지정된 현충일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호국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오전 10시에 1분간 사이렌에 맞춰 묵념을 올리며 조의를 표하는 국가적 행사를 실시한다.
아직도 한반도는 세계유일의 분단국인 상황에서 불안정한 평화가 지속되고 있기에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한 우리는 국가를 위해 공헌 및 희생하신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명예와 자긍심을 고취시키면서, 호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온 국민의 귀감으로 삼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를 지킨다는 숭고한 사명감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이스라엘에서도 군인은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 속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과 함께 지금 이 시간도 우리의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을 지키고 있는 국군장병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다에서 호국의 영령들
우리 해군이 6·25전쟁이후에도 어선을 보호하거나 NLL(북방한계선)을 포함한 우리의 바다를 지키는 과정에서 꽃다운 젊은 청춘들이 산화되어 호국영령이 되었다. 해군 초계호위함(PCE-56 당포함)이 1967년 1월 19일 강원도 거진 동쪽 해상인 어로저지선 부근에서 명태잡이 어선을 보호하던 중 북한 해안포(125mm) 공격으로 선체에 200여 발의 포탄을 맞고 침몰되면서 승조원 79명 중 39명이 사망한 『당포함 피격사건』이 있었다.
NLL을 무력화시키려는 북한과 NLL을 사수하려는 남북 해군간의 전투도 3차례나 있었다. 1차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오전 8시 28분부터 9시 42분까지 약 14분간 벌어진 해상전투였다. 북한 경비정이 남침하여 기습공격을 했지만 우리 해군이 즉각 반격함으로써 북한 어뢰정 1척 격침, 함정 5척이 대파하었고, 사망자 30여 명을 포함한 약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반면 우리해군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NLL이남으로 넘어와 우리 경비정에게 기습포격을 가한 사건인데 영화 『연평해전』으로 알려진 해상전투이다. 북한이 1차 연평해전을 설욕하기 위해 사전에 용의주도한 계획을 통해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2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참수리 357』정의 정장을 포함한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선체는 침몰했다. 우리 해군의 반격으로 북한 해군도 13명 사망과 부상자 25명이 발생했고 『등산곶 687』정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3번째 해전인 대청해전은 2009년 11월 10일 11시 27분 북한 경비정이 대청도 동쪽 NLL을 월선하여 선제기습 공격을 하면서 발생했으며, 전투결과 우리해군은 거의 피해가 없는 반면 북한 해군은 8명의 사망자와 함께 경비정이 반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천안함 피격사건』은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경 백령도 서남방 약 1.8km 해상에서 북서방향 6.8kts의 속력으로 경비작전 중이던 우리 해군 초계함『PCC-772』함이 외부의 강한 충격으로 선체가 두 동강이 난 채로 침몰했다. 천안함이 피격되어 침몰하면서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지만, 40명 전사, 6명 실종, 선체인양과정에서 UDT대원 1명이 순직했다.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 영국 등 5개 국 전문가를 포함한 24명의 민군합동조사단이 구성되어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첨단기법인 시물레이션까지 동원해서 얻어낸 결과는 “북한 연어급 어뢰정이 발사한 중어뢰(CHT-02D, 폭발장약 250kg)”에 의해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한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해전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임진왜란을 주도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한양과 평양성을 점령하고 일본 수군을 통해 남해와 서해를 돌아 지상병력에게 보급과 물자를 조달하면서 북상하여 명(明)나라를 공격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통해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고, 전라도 곡창지대를 지키면서 왜군의 해상보급을 차단시킨 결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을 좌절시킬 수가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제해권 장악은 당시 불리했던 전세(戰勢)를 역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명(明)이 망하고 청(淸)이 등장하는 동북아 역사변화의 동인을 제공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의 파죽지세와 같은 남진으로 남한의 거의 전 지역이 점령당하는 위기상황에서 맥아더 장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상륙작전을 계획했다. 맥아더 장군은 미 제7함대 세력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 261척의 함정과 미 제10군단 예하 한국군 2개 연대를 포함한 미군 2개 사단 등 7만여 명을 지휘하여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 병참선 차단과 배후공격을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서울탈환과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를 조성하여 북한의 남한점령 목표를 무산시킨 결과와 함께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킨 전략적 의미가 있다.
미래 전쟁의 포성은 바다에서 시작
지리적 위치는 국가안보와 번영을 좌우하는 숙명적인 것이다. 주변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geo-politics)현상은 전략적 내선(內線)이라는 이점을 제공하지만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상륙하기 위한 발판(spring board)이자 대륙세력이 해양으로 나가는 디딤돌(stepping stone)인 동시에 양 세력을 차단할 수 있는 방패막에 해당한다. 그래서 해양과 대륙세력 모두는 한반도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한반도의 지경학적(geo-economics) 특징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석유의 년간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세계 5위이고, 원유를 들여와 석유제품을 만달어 파는 석유정제능력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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