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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8월호 광복절 특집] 일본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이니치`
2019.08.30 Views 1164 관리자
일본 속 재일교포
일본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이니치’ -
한일 국제회의 통역사
김주영
약 15여 년 전,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지인과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지인이 한국에 온 김에 유명한 기념품인 김과 인삼주 등을 구매하고 싶다고 해서 동행했다. 우리가 한 기념품 가게에 머물며 이리 저리 둘러보는 동안 마찬가지로 이 가게를 찾아 온 손님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일본에서 왔다는 두 사람은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친척 관계였는데 한 사람은 일본 이름이 적힌 일본 여권을 들고 있었고, 한 사람은 한국 이름이 적힌 한국 여권을 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두 사람 모두 기존에는 조선적을 보유한 재일교포였으나 그 중 한 명은 어릴 때 일본으로 국적을 변경해 30년 넘게 일본 이름으로 살아 온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조총련, 즉 일본에 거주하는 친북한계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소속된 조선학교를 초등부부터 대학교까지 이수한 교포였다. 하지만 그는 점점 북한 여권 소지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제약을 느끼면서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변경하고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한국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궁금함을 가득 안고 있었다. 자신들이 이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털어 놓으며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 냈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교육을 받고 일본 대학에서 유학을 한 필자 역시 직접 재일교포들을 가까이 접하기 전에는 재일교포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남대문 시장에서 만난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한 그가 조선학교 학창시절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불현듯 한 소설이 떠올랐다. 바로 재일교포 소설가인 ‘가네시로 가즈키’가 2000년 발간한 소설 ‘GO’다. 재일 한국인 3세인 스가하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는 원래 조선적 재일교포로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조선학교를 다니다가 민족 정체성, 혈통 등을 강조하는 학교와 아버지에게 신물이 나 고등학생 때 일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의 아버지 히데요시는 권투 선수 출신으로 조선적 중에서도 북한을 지지하며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하와이 여행을 빌미로 한국으로 국적을 변경하게 되고, 그 시기에 스기하라는 조선학교를 떠나 일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조센징이라고 시비를 거는 불량배들이 따라 붙어 계속 싸움을 하면서 진정한 일본인 친구를 만나게 되기도 하고, 또 일본인 여학생을 만나 교제를 하는 과정에서 실은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관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이듬해 영화로 제작되어 일본 영화업계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는데 이 소설과 영화 속에 나온 주인공과 가족들이 바로 이 남대문에서 만난 이들과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었기에 조금은 그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재일 교포’ 혹은 ‘재일 동포’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까? 일본에서는 줄임말로 ‘자이니치(재일)’라고 불리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대한제국 독립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과 그 자손을 뜻한다.
재일교포는 대한제국 때 일본으로 유학한 학생들이 시초가 된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한반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되면서 경상도나 제주도 등의 한반도 남부 출신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해방 이후 일본에 머물거나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 배경을 살펴 보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동원된다. 이로 인해 본토는 노동력이 부족해 지면서 조선의 실업자들에게 일본의 일자리를 소개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인을 데리고 오게 된다. 해방 후 한반도로 돌아간 조선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불안한 한반도 정치 상황과 경제 혼란으로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가 원래 일했던 공장이나 지역에 머물거나, 여러 상황으로 인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남아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오사카 지역에 많은 재일교포가 거주하고 있는데,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일했던 군수공장이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 내 재일교포 사회에서도 남한과 북한 진영으로 나뉜다. 각각 대립하고 있는 이념을 바탕으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발족해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재일 조선인의 귀국운동이 활발해 지기 시작한 것은 1958년 8월로 북한 적십자회와 일본적십자사 간 합의가 이루지고, 이를 바탕으로 재일 조선인의 북한으로의 귀국 운동이 본격적으로 이행된다.
당시 한국은 6.25전쟁으로 인해 황폐한 빈곤국이었지만 북한은 국제협조에 의한 공산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발전을 이뤄 재일조선인들에게 지원금을 송금하기도 했다. 북송사업을 진행할 당시 조총련에서는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소개하면서 총련계 동포들이 전국적으로 귀국 실현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일본공산당, 사회당을 비롯한 80여 명의 정당, 단체 대표들이 모여 ‘재일조선인귀국협력회’를 결성해 본격적인 북송사업이 시작되었고, 1959년 12월부터 1984년까지 9만 3천여 명의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영주 귀국하게 된다.
이 같은 재일교포들의 북송사업은 생산증대를 노린 북한의 노동력 강화 운동인 ‘천리마운동’으로 노동력을 필요로 한 북한 정부와 당시 생활보호수급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자이니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일본 정부의 목표가 일치했던 결과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북한으로 넘어간 재일 조선인들 중 북한에서 차별을 받거나 행방불명 되거나 처형되었다는 소식과 갑자기 스파이로 몰려 강제수용소에 보내지는 경우도 많았다는 증언 등이 들려 오고, 이러한 실태가 재일 교포 사회에 전달되어 귀국자는 격감하게 되면서 귀국사업은 사실상 종료하게 되었다.
반면,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의 경우, 19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되기 전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국교가 없었기 때문에 외국인 신분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다. 1965년 6월 박정희 정권이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 정권과 한일기본조약 및 4개의 협정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 협정들 중 ‘일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협정’이 있다. 재일 조선인의 처우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 협정 내용은 ‘협정 발표 후 5년 이내에 한국적을 가진 사람이 영주 신청을 하면 25년의 유효기간을 갖고 본인과 직계 자녀에 한 해 영주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국국적이 아닌 조선인을 포함하지 않고, 25년이라는 기한이 설정되어 있는 등 많은 제약이 있었다.
이후 한일조약에서 정한 25년의 기한이 끝나는 1991년 6월 전에 그 후속조치에 대해 재협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한일 법적지위 협정에 기초한 합의 결과에 관한 각서’에 양국 당국이 서명을 하면서 한국적자 3세 이하의 자손에게도 일괄하여 영주권을 부여하여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와 처우가 개선되었다. 한편, 한국국적이 아닌 조선적자는 1982년 일본이 베트남 난민을 수용한다는 난민조약에 가입하면서 함께 ‘특례영주’제도를 통해 일본에 거주하게 되었다.
즉, 재일교포가 지칭하는 대상은 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 조선인과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 한국인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이들을 두고 재일교포, 재일동포 혹은 재일조선인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결혼이나 취직 등을 앞두고 일본 국적으로 전환하는 2세, 3세 재일교포도 늘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쭉 생활했다고 하더라도 자이니치는 일본에서 외국인에 해당되기 때문에 참정권이 없고 구직시에도 여러 제약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을 피하기 위해 많은 재일교포들이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본명이 아닌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재일교포 혹은 재일동포의 정의는 일본국적을 소지한 한국계, 조선계 출신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일본국적으로 귀화한 사람들은 일본인으로 간주하고, 일본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영주권자 등을 자이니치로 취급한다.
일본의 독립행정법인통계센터에서 2018년 12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재일교포의 총수는 482,882명이며 그 중 한국계가 452,701명, 조선계가 30,181명이다. 그리고 한국과 조선국적에서 일본국적으로 귀화한 누적귀화허가자수는 375,518명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일본 대학을 졸업하고 한일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하면서 여러 기회를 통해 많은 재일동포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에서 만난 한 여성은 일본 국적의 일본 이름을 보유했지만, 일가 친척이 다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어 명절 때만 되면 제주도로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곤 한다. 지금은 한국의 연예 기획사에서 일본 진출을 도모하는 한국 연예인들의 일본어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최근 만난 한 재일교포 회사원은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일본에서 살며 일본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회사에 입사했지만 쭉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한국 이름으로 살아가다 이번에 처음으로 주재원 발령을 받아 한국에 거주해 보게 되었다고 했다.
한편 대학 기간 4년 내내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 친구가 재일동포인지 몰랐을 정도로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던 한 친구는 뒤늦게 실은 자신은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한국인 유학생이었던 필자에게만 조용히 고백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 대표 인사들을 만나 화제가 되었던 일본 유명한 기업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경우,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한국식 본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재일 동포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그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다. 재일동포라고 해도 그들이 처한 환경, 자라온 배경, 소속된 단체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일본 사회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 사회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조선계임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재일동포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역사학자나 정치사상가, 문학가 등으로 활동하는 재일동포들도 있다. 일부는 한국으로 건너 와 활동하기도 하고, 일본과 한국 양국에 대한 깊은 이해도나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자처하는 이도 있다. 또는 아예 탈민족적인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사회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재일교포들을 접하다 보니 앞서 소개한 영화 “GO”에 나온 한 대사를 소개하고 싶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따온 문구다.
“이름이 무엇이든 어떠리?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재일교포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관한 나름의 처절한 고민의 시기를 적어도 한번씩은 거치지 않았을까? 과연 모국 사회는 이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 될까?
*참고문헌: 김광열, “일본 사회의 마이너리티, 재일동포”
조정남 “북한의 재외동포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