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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8월호 광복절 특집] 광복절에 생각해 보는 국가흥망의 요인

2019.08.30 Views 1142 관리자

                 광복절에 생각해 보는 국가흥망의 요인

                                                                   박영준 (국방대 교수부장, 안보대학원 교수)

 

1. 광복 70여년간의 성취

 

광복절(光復節) 74주년을 맞는다. 36년간의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날이다. 보통 열강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다른 국가들은 그 날들을 독립기념일이나 해방절로 명명하곤 한다. 그러나 유독 우리 민족만은 이날을 광복절(光復節), 빛을 다시 찾은 날로 명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광복절의 명칭은 사실상 빛이 없었던 시대나 다름없었던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 이제는 빛나는민족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시대적 염원을 담아낸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광복절 이후 지난 70여년간 우리 국가는 당시 독립한 신생국가들 가운데에서 예외적으로 빛나는 국가적 성취를 이룩해 왔다. 식민지 상태에서 갓 벗어났을 때, 한국의 국가적 상태는 극히 빈한하였다. 경제수준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어서 일본이나 프랑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 국가들이었던 말레이시아나 필리핀보다 국민소득 등의 경제지표가 멀리 뒤쳐져 있는 상태였다. 국가발전에 필요한 산업시설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국가재정은 물론 국민들의 일상 생활도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대학교육을 받았거나 해외유학을 나간 학생들의 숫자도 적었고, 그들이 일할 양질의 직장도 많지 않았다. 더욱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들도 1950년대 말까지 30여개 국을 넘지 않아 국제적 위상도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비전과 추진전략을 가진 지도자들이 정치, 경제 분야에 등장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이에 적극 호응하여 각자의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해나가기 시작하면서, 빈한했던 신생 독립국가는 눈부신 변모를 이룩해 내기 시작했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상태에서 출발한 화학, 기계, 조선, 제철, 자동차, 그리고 전자 등의 산업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선두권의 국가들을 추격했고,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으로 국제경제를 주도하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1950년대까지 수교를 맺은 국가들이 제한되어 경제적 활동마저 위축시켰던 외교는 그 이후 한일국교정상화, 베트남 파병, 중동에의 경제적 진출, 88서울 올림픽 개최 등을 활용하여 수교국가의 범위를 크게 확장했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국가의 위상을 크게 드높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은 그간 하계 및 동계올림픽과 월드컵 등의 국제제전들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고, 나아가 핵안보정상회의나 G20 정상회의 등의 중요한 국제회의를 주도하거나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다 보니, 이제는 스포츠나 예술 등의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세계 정상급의 인재가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타인들의 무대인 것처럼 그간 바라보았던 프랑스의 칸느영화제나 미국의 빌보드 차트, 그리고 메이저리그와 LPGA 등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자랑스럽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제는 일상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국가적 성취를 거둔 것이 그간 우리 지도자와 국민들이 올바른 전략을 세우고 효율적인 정책을 기울여온 노력에 바탕한 것이었음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정치독재와 군사쿠데타, 그리고 인권과 민주화 운동 탄압 등의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이승만과 박정희 등 초창기 지도자들은 정치적 민주주의체제와 개방적 시장경제를 선택하였고, 한미동맹 체결과 자주국방 등의 노력을 통해 국가안보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노태우와 김대중 등의 지도자들은 공산권 국가와도 문호를 적극 개방하고, 일본에 대해서도 문화를 개방하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지금의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발전을 견인하였다. 같은 민족인 북한이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대한민국이 이룩한 것과 같은 성취를 이룩하지 못한 것을 깊게 성찰한다면, 그간 우리 지도자와 국민들이 선택한 국가전략과 그를 위해 기울인 국가적 노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2. 국가 망국의 요인

 

이러한 성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광복절을 맞아 왜 우리 민족이 100여 년 전에는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었던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망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보는 관념이 강하다. 즉 망국(亡國)의 원인을 타국의 영토적 야망에서 찾는 외부책임론의 경향이 강한 것이다. 그러나 왜 일본이 제국주의적 야망을 갖게 되었고, 조선은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 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고찰이 부족하다.

 

일본이 한반도를 위시한 대륙에 대한 팽창을 시도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그들이 거둔 국가의 제도적 변화와 경제발전 결과 국력이 여타 주변 국가들에 비해 급격하게 성장한 것에 근본원인이 있다. 이러한 국력성장을 바탕으로 일본 지도자들은 아시아 대륙에 대한 세력팽창의 대외전략을 세우고, 그 군사적, 외교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1890년 일본 수상에 취임한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의회 연설을 통해 주권선(主權線)과 이익선(利益線), 즉 일본의 안보정책은 영토로 구성된 주권선 뿐만 아니라 그 외곽에 위치한 이익선인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일본은 조슈번 사무라이 출신이기도 한 야마가타의 지도 하에 근대적인 육군과 해군을 건설하고, 군사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을 키웠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국력을 바탕으로 1894년 청일전쟁을 도발하여 조선에서의 종주권을 갖고 있던 청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 한반도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가지면서 남진한 러시아에 대항해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켜 전승을 거두었다. 청국과 러시아와의 대규모 전쟁에서 승전한 일본은 미국과는 카스라-태프트 조약, 영국과는 영일동맹 제2차 개정을 단행하면서, 국제사회 주도국가들로부터 조선에 대한 실권을 확인받는 외교를 전개하면서 조선을 식민지화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이 이러한 국가전략 하에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목표를 추구해 가는 동안 조선은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국왕 고종이 뒤늦게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일환으로 군함을 구입했지만, 당시 구입한 양무함 등은 배수량 1천톤 내외의 상선에 불과한 것으로,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운용한 배수량 12천톤의 전함 미카사를 포함한 연합함대 전력에는 도저히 필적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요컨대 조선이 망국의 운명을 맞게 된 근본원인은 제국주의적 야심을 키우고 있던 외부 국가의 국력 증진과 국가전략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국내 정치세력의 무지와 대응전략의 부재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제정세에 무지한 채 국력을 증진하지 못하고, 국가발전을 위한 국가전략을 갖지 못한 정치세력이 존재한다면 언제든지 망국의 운명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우리는 광복절을 맞아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3. 21세기 국가흥망의 갈림길

 

그간 훌륭한 국가적 성취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한민국은 내외적으로 많은 난제에 직면해 있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극적인 정상회담을 수차례 가지면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지만, 북한의 핵능력과 관련 시설이 폐기되는 수준의 비핵화를 전망하기에는 여전히 불투명한 난관들이 존재한다. 중국이 급속하게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동맹국 미국이 갖고 있던 글로벌 및 아태지역 위상에 도전하는 양상들이 경제와 군사 측면에서 부각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에서의 복합적인 난제가 우리 앞에 직면해 있다. 국가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핵능력을 포함한 북한의 비대칭전력 위협이 명확하게 배제되어야 하고, 나아가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상호 신뢰구축과 협력 질서 구축이 필요하다. 이같은 안보과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와 국민들이 다음과 같은 국가전략을 설정하고 그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첫째, 경제력과 군사력을 포함한 국력 수준을 지속적으로 증강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가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도달할 때 까지 그를 억제하기 위한 군사능력과 태세를 견지해야 하고, 나아가 미-중간의 대립으로 촉발될 수 있는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의 군사력 설계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력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둘째,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밝힌 것처럼 국가적 위상의 증진을 고려하고 한국군의 작전기획 능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그간 수차례 연기되었던 전시작전통제권은 전환될 필요가 있다. 다만 한미 양국이 개별적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 하더라도, 연합방위 태세가 약화되어선 안될 것이다. 미일동맹이 개별적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만, 주일미군과 각 자위대 간의 육해공 기지 공유를 통해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고 있는 점이 우리에게도 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을 비핵평화의 정상국가로 유도하기 위한 대북정책이 중층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적대적 의도를 가진 국가와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호 안정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은 국제정치이론 뿐 아니라 냉전기 미소관계를 통해 실제 정책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이같은 관점에 따라 북한에 대해 억제태세를 견지함과 동시에 정상회담 등 다방면의 접촉을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비핵화를 견인해 가야 한다.

넷째, 북한의 평화적인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등 전통적인 우방국가들과 긴밀한 정책공조를 지속해 갈 필요가 있고, 현재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상호협력을 위해 다자간 안보질서 구축을 위한 글로벌 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우리는 이미 한중일협력기구라는 국제기구도 관련 국가들과의 협력 하에 만들었고, 중견국 외교를 강화하기 위한 협의체도 조직하였다. 이러한 다자간 외교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 증진에 기여할 뿐 아니라, 북한 비핵화 및 동북아의 안정적 질서 구축을 위해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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