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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9월호 안보논단] 문산호, 학도병, 그리고 장사상륙작전
2019.09.30 Views 1104 관리자
문산호, 학도병, 그리고 장사상륙작전
김혁수(예비역 해군준장, 잠수함연맹 회장)
6.25! 바다로부터 시작된 전쟁
금년은 6․25전쟁 69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민족사에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으며 전 국토의 70%가 초토화 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이 생겨난 참으로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미 작가 Clay Blair는 그가 쓴 책 ‘The Forgotten War(잊혀진 전쟁)’에서 6․25전쟁은 20세기 미국이 수행한 9개의 전쟁 중 가장 중요한 전쟁이며 기간과 규모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3배, 제2차 세계대전과 비슷하고 공산주의를 막아낸 중요한 전쟁인데 잊어가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전쟁의 당사자인 우리가 미국인보다 6.25전쟁을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6․25전쟁은 ‘바다로부터의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바다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통상적으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0분 38선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남침해 왔다고 하지만 4시 30분 강원도 옥계해안에 북한군이 이미 상륙을 했으며, 북한 상륙군 600여 명을 태운 함선이 대한해협에까지 와 있었다. 당시 함선의 속력을 고려하면 6월 24일 이전 우리 바다를 침범한 것이다. 둘째, 바다를 통해 전쟁지속능력을 확보했다. 우리 백두산함이 대한해협 해전에서 북한 상륙군을 태운 선박을 격침시키고 승리하여 해로와 부산항을 지킬 수 있어 병력 500만 명과 전략물자 5,200만 톤, 유류 2,200만 톤이 들어 올 수가 있었다. 셋째, 바다에서 전력을 투사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바로 포항상륙작전,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바다에서 전력이 투사되었다. 상륙작전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6.25 전쟁 당시 중요한 상륙작전 하나인 장사 상륙작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아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상륙작전이란?
바다에서 적의 해안을 공격하는 군사작전으로서 육해공군의 합동작전이다. BC 1200년 경 그리스 군이 트로이 전쟁에서 거점을 확보한 것과 BC 490년 경에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군이 마라톤 만에 거점을 확보한 것이 상륙작전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실시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 6.25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밀려갔으나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여 서울을 탈환하고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상륙작전에는 상륙돌격, 상륙기습, 상륙철수, 상륙양동 등이 있으며 상륙돌격은 상륙군이 적 해안에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서 우군 세력을 적 해안에 설치함과 동시에 지상군의 행정상륙을 보장하거나 내륙에서 지상부대와 연결을 유지하는 비교적 대규모 상륙작전이며 인천상륙작전이 여기에 속한다.
상륙기습은 적에게 피해를 가하고 첩보를 수집하거나 물자와 요인을 탈취, 포획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점령한 다음 계획된 철수를 수반하는 소규모의 변칙적인 작전이며 군산상륙기습작전이 그 예이다.
상륙철수는 투입된 상륙군 부대가 필요에 따라 타 작전지역에서 운용되기 위해 해상으로 철수하는 작전이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피난민과 함께한 흥남철수작전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상륙양동은 적의 행동을 불리하게 유도하기 위해 세력시위에 의한 기만 목적으로 실시되는 상륙돌격과 유사한 행동을 과시하는 작전이며 소개하고자 하는 장사상륙작전이 대표적인 양동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일등공신, 장사 상륙작전
- 장사상륙작전의 준비 -
① 임무 : 동해안 영덕지구로 상륙하여 북한군 제2군단의 후방을 교란하라. ② 작전 개시일 : 1950년 9월 13일 ③ 보급 : 제1군단에서 수령하라. 곤란할 시에는 항공보급을 실시한다. ④ 상륙작전대책 : 대형 LST를 이용한다. 상륙전을 감행하기에 앞서 상륙지구 전역에 걸쳐 항공기 폭격 및 해군 함포 사격을 실시, 북한군을 섬멸한 다음 상륙을 개시한다. ⑤ 전술고문관으로 전성호 대령을 파견한다. ⑥ 통신 : 통신감실에서 12명으로 편성된 무선전신반을 배속받아 육군 제1군단 지휘 무선망을 경유 육군본부와 통신을 유지하라. |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과 시기를 같이하여 북한군
을 교란 및 기만하기 위하여 상륙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을 계획했다. 장사상륙작전을 통해 적 후방을 교란하여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포항 남쪽에서 적과 다시 대치하고 있었던 육군 제3사단의 북진을 지원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적의 관심과 병력을 동해안에 묶어 두려는 것이었다. 장사동은 동해안 포항 북쪽 약 25㎞ 해안에 위치한 작은 어촌의 이름이다. 이곳은 남⋅서⋅북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해발 200미터의 2개의 고지가 있다. 북한군은 남쪽의 지경동 고지와 북쪽의 부흥동 고지의 산기슭에 집결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장사동 상륙작전은 유엔군사령관의 작전통제 하에 한국육군과 해군에 의해 합동작전으로 수행된 작전이다. 육군본부는 북한군 후방을 교란하기 위한 상륙작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9월 12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작전명령 174호를 하달했다.
- LST 문산호 -
문산호는 미 해군이 운용하던 LST 120이었으나 정부수립 이후 미국으로부터 인수하여 교통부산하 대한해운공사에서 운용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군에 동원되었다. 동원되자마자 묵호경비부 대원들을 포항으로 후송하고 육군의 이응준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를 여수에서 진해로 후송하기도 했다. LST 문산호는 태풍 케지아(Kezia)가 9월 13일 일본 큐슈에 상륙하여 동해상을 통과한 이후, 9월 14일 16시 772명의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4개 중대)를 편승하고 부산항에서 출항했다.
- 육군독립 제1유격대대 -
상륙부대는 한국육군에 예속된 학도병으로 조직된 유격대(비정규부대)였다. 대부분 고등학교 2∼3학년에 다니다 지원한 군번과 계급이 없는 청소년들로 구성되었고, 대장은 이명흠 육군대위였다. 이 부대에는 전술고문관으로 유격작전 권위자인 전성호 한국육군 대령과 미국육군 해리슨 중위 및 미 부사관 1명이 파견되어 있었다. 제1유격대대의 전체인원은 처음부터 대구에서 모집된 200명과 밀양에서 모집되어 있던 학생과 청년 560명이 합해져 최종적으로 추가되어 772명이 편성되었다.
- 장사상륙작전 과정 -
실제 작전개시일은 9월 13일이었지만, LST 문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