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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11월호 안보논단] 한반도 안보환경과 다자간 안보협력체계
2019.11.28 Views 919 관리자
<한반도 안보환경과 다자간 안보협력체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조남훈 -
어떤 국가 스스로 자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자주국방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야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 나라가 상당한 부자일지라도 반드시 자주국방을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을 가지고도 얻을 수 없는 무기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구매할 수 없는 첨단핵심무기체계나 대량살상무기 같은 것들이 그러한 무기체계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국의 안보를 독자적으로 지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국제사회가 핵무기 보유를 허용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및 중국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국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이 국가들 이외에 인도, 파키스탄 및 이스라엘 등의 국가도 핵무기를 실제로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되나 이들 국가들은 국제사회로부터 정식으로 용인 받은 것이 아니다.
핵무기와 관련된 규율 및 규범을 규정한 국제사회의 조약은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이다. 지구상에서의 핵무기 확산방지를 명분으로 체결된 이 조약은 조약체결 당시 핵무기를 보유하던 5개 국가에게만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였다. 그 결과 핵보유가 금지된 5개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은 돈과 기술을 보유할지라도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게 되었으며 만약 핵보유를 시도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힘의 논리”가 국제사회에 만연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결코 공정한 처사라고 할 수 없다. 핵무기는 공격무기뿐만 아니라 타국의 공격을 "억제"하는 방어무기로도 탁월한 역할을 하는데 이처럼 뛰어난 억제력을 보유한 무기체계를 소수의 국가만이 독점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의 핵개발 금지를 추진한 것은 1960년대이다. 대량살상이 발생할 수 있는 핵전쟁의 가능성을 최소화한다는 미명하에서 사실은 소수 핵보유국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핵보유국인 유엔 상임이사국들은 NPT체제를 출범시키고 1968년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 255호』를 채택함으로써 비핵국가의 NPT체제 참여를 독려하였다. 『결의안 255호』의 내용은 핵개발을 포기하고 핵무기 획득을 금지하는 NPT체제에 가입할 경우 핵보유국은 비핵국가에게 “적극적인 안전보장”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안전보장 약속에 따라 핵보유 강대국은 자국의 동맹국가나 협력관계인 비핵국가에게 다른 핵보유국의 공격 및 침략으로부터 지켜준다는 약속의 일종인 확장억제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NPT는 핵보유국이 NPT 회원국인 비핵국가에 대해서 핵을 사용하여 위협을 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이것이 “소극적 안전보장”이다. 따라서 핵보유국과의 안정보장관계 수립은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확장억제는 동맹 및 우방을 침략하려는 적에 대해 보복, 거부 및 작전적 패배(operational defeat) 등을 위협함으로써 적의 침략이나 강압을 방지하고 동맹 및 우방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 및 일본 등이 미국으로부터 확장억제를 제공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보유국과 대립하던 역사를 보유했거나 현재 그러한 처지에 처한 한국과 같은 비핵국가가 확장억제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한 국가가 자국의 안보를 보장받는 통상적인 방법은 국력이나 군사력이 우월한 다른 국가와 동맹관계를 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는 양자 간에 그치지 않고 다자간에도 성립된다. 나토의 집단안전보장체제가 그러한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자국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다양한 위협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었다. 1953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서이다. 한국은 1950년에 북한의 침략을 받았으며 이후 한국전쟁에 참여한 중국과도 전쟁을 치렀다. 이러한 위협의 존재가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의 동기가 되었다.
그런데 동맹이 동맹체결 국가에게 긍정적 효과만을 제공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는 동맹 파트너의 분쟁에 연루되는 부정적 효과를 주기도 한다. 동맹국은 다른 동맹 파트너 국가의 분쟁에 연루되어서 참전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맹관계에서 발생하는 “연루와 방기의 딜레마” 중 일부이다.
동맹 국가는 자국의 동맹 파트너가 위협에 처할 경우 무력을 동원해서 그 국가를 도와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국에게 똑같은 위협이 닥쳐도 동맹 파트너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동맹 파트너가 직면한 위협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깊숙하게 개입될 경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 있다. 이것이 “연루의 위험성”이다.
반대로 동맹 파트너 국가는 위협에 직면했을 때에 동맹 국가가 자국을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이것이 “방기의 위험성”이다. 핵심은 동맹 파트너 국가의 문제에 너무 깊게 연루되지 않으면서 나의 안보가 동맹 파트너로부터 방기되지 않도록 적절한 수준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를 방기한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애치슨라인” 설정에 따라 미국의 방어지역에서 제외된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침략 받았던 사실이 이러한 방기의 위험성을 말해준다. 한국은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미군 철수를 반대해 왔다. 물론 미국은 자국군의 철수 이후에도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안전보장과 확장억제를 제공해줄 수 있지만 미군 주둔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한국에게 더 큰 신뢰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군의 한반도 주둔 모습도 향후 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세계전략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군사력 운용에 드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미국은 해외에 주둔하는 자국군 규모를 최소화시키고 국지적 분쟁에 대해서는 그 지역 국가가 우선적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세운바 있다. 이는 일종의 역외균형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전략이 트럼프대통령 시대에 크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향에 맞추어 동맹국의 역할 제고도 강조되고 있다. 지역 국가가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미국 주둔 국가는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이 주둔하는 나토, 일본 및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요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둘째는 비핵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미군철수 요구이다, 사실 북한은 미국에게 미군철수를 요구할 입장이 아니다. 미군주둔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반을 둔 문제로서 한미 양국이 논의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비핵화와 미군철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비핵화의 과정에서 미군철수도 비핵화 카드 중 하나로 고려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미국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곤 한다. 따라서 비핵화의 과정에서 미군철수는 아닐지라도 미군감축 문제는 얼마든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유엔사 해체 문제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부상할 수 있다. 그런데 유엔사 해체 문제는 미군 철수보다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원론적으로 유엔사는 유엔의 결의에 의해서 한반도에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만 효력을 발휘하는 조직이라고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과거 유엔총회에서의 표 대결 와중에 한반도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사가 해체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은 유엔사 유지의 필요성을 점차 크게 인식하는 듯하다. 아태지역에서 급속도로 부상하는 중국의 존재로 인하여 유엔사 같은 조직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사 해체 문제가 좀 더 복잡한 이유이다.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조정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추정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핵화가 달성되어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한반도의 안보구조는 급격히 변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우려되는 동맹 관련 사안은 미국의 대중정책이고 그 과정에서 인도-태평양전략에의 동참을 요구하는 미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정립 문제이다.
우리에게 한미동맹은 대북위협에 대항하여 한국의 안보를 수호하는 핵심체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은 한국이 대북위협뿐만 아니라 대중위협에도 동참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을 국제질서를 변경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을 위협으로만 간주할 수 없다. 한중 경제관계가 매우 긴밀하고 북한 및 통일 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지원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의 입장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의 대한국 보복을 한번 경험한 우리로서는 이러한 결정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인도-태평양전략 동참을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의 대한국 압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한국의 참여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방위비 분담에 대한 압력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한편 전작권 전환 문제도 원활하게 매듭지어야 하며 한일문제 해결을 통한 일본과의 군사정보교류협정 복원 문제도 해결해야만 한다. 군사정보교류협정 문제는 미국이 매우 중시하는 한미일 군사협력 관련 사항으로써 중장기 관점에서 그냥 방치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이 한미동맹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한미동맹을 내팽개칠 수는 없다. 한반도에서 여전히 위협이 존재하고 완전한 자주국방을 실천할 수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위상 상승에 따른 좀 더 많은 동맹기여는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원활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 협력적인 중견국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