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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12월호 연말특집] 한일관계 상생의 길

2019.12.26 Views 1091 관리자

한일관계 상생의 길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한일관계 악화에 대한 국내 논의 구도
 
지난 1년여,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810, 우리 대법원은 일제하 강제징용공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지급되었던 청구권 자금에 개인 피해에 대한 보상도 포함되었다고 하면서, 한국 정부가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공교롭게도 그 즈음에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합의 하에 위안부 피해자 지원의 목적으로 일본 정부의 기금을 바탕으로 설치되었던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도 일본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에 더해 우리 정부는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석하려던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욱일기(旭日旗)를 게양하는 한 참가를 불허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결국 해상자위대 함정의 방한이 무산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게다가 작년 연말에는 동해상을 비행 중이던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인접 해상을 항행하던 우리 해군 함정이 사격용 레이더를 작동했다는 항의를 제기하여, 한일 간에 갈등과 대립이 악화되기도 하였다.
양국간 관계 악화 속에 일본 정부는 돌연 20197월과 8, 한국이 전략물자 수출관리를 부실하게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도체 관련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취하였고, 이어 일종의 무역우대제도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일본의 부적절한 조치에 대응하여 우리 정부도 전략물자 수출관리와 관련하는 국제레짐에 공정한 조사를 공동으로 요청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나아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을 제소하였다. 그리고 201611월에 양국이 체결하였던 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국간 갈등이 급기야 경제와 안보분야에까지 파급되는 양상을 보이며, 역사 및 영토를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안보분야에서 양국이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투트렉 대일정책의 기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일관계의 악화에 대해 국내외에서는 상이한 평가와 대응정책론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의 부상과 북한 핵위협의 상존 속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유지가 한국으로선 불가결하며, 따라서 한일간 지소미아 유지 등을 통해 한일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수상이 조속히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양국간 협력의 기조를 복원해야 한다는 요청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의 대한 무역규제 조치가 매우 부당한 것이며, 이에 대응하여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 및 일본 여행 자제를 강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일본의 부당한 무역규제 조치로 인해 양국간 신뢰가 크게 손상되었으며, 따라서 한일 지소미아 종료도 불가피하다고 옹호한다. 나아가 남북한 간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과의 지소미아 종료는 오히려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중국과 러시아의 대한 협력도 촉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한국의 국가목표와 한일관계
 
한일관계 악화와 그에 대한 논의 구도는 한국이 추구해야 할 국가목표와 국가이익을 위해 일본이 과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지소미아 유지를 주장하는 논의는 일본의 존재가 한국의 안보에 이익을 주고 있다는 전제에 서 있으며, 그 폐기를 환영하는 논의는 한국의 안보이익을 위해 일본이 오히려 부담이 되거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상위의 목표가 국가안보라는 관점에서, 과연 일본의 존재가 우리의 안보이익에 도움을 주는 것인가를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전통적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에게 잠재적으로 위협을 주는 요인은 역시 북한의 대남전략과 핵 및 미사일 전력 포함한 군사능력 강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더해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환경의 불안정성, 즉 미.중간, 혹은 중.일간 분쟁 가능성을 지적할 수 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국은 이같은 전통적 안보위협요인들에 대응하여 크게 4가지 유형의 안보정책을 추구해 왔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 자신의 군사능력과 안보태세를 강화하려는 자주국방의 정책이다. 육해공군의 전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하고, 예비군을 창설하고, 이들 병력에 효율적인 무기체계를 공급하려는 방위산업 육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한미동맹의 강화이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연합사를 창설하고, 수시로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고, 확장억제에 대한 공약도 확인하면서, 북한의 각종 군사위협을 억제하는 태세를 강화해온 것이다. 셋째, 다자안보제도에 적극 참가하고, 안보협력의 어젠다를 제출하여 동맹 이외의 중국, 러시아와도 신뢰구축을 공고히 해온 것이 세 번째 축이다. 1990년대 이후 결성된 ARF, 2000년대 들어와 정비된 아세안+3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그리고 한중일 협력기구 등이 다자안보제도의 초보적 유형에 속한다. 넷째, 북한에 대한 억제태세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대화 및 신뢰구축 노력을 지속해온 것도 중요한 안보정책의 한 축이었다. 잠재적인 적대국과의 대화 및 신뢰구축이 그 위협성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 이래, 역대 정부가 북한과의 직간접 대화를 모색해온 것이 한국 안보정책의 또다른 중요 축이었다.
그런데 한국 안보정책의 이같은 4가지 축이 보다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 한일 안보협력은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컨대 한미동맹이 전평시에 보다 강력한 대북 억제태세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주일미군 및 미일동맹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엔사 7개 후방기지가 일본 내에 소재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시이다. 주일미군 및 미일동맹이 한미동맹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한일간 안보협력이 그 매개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 및 러시아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다자간 안보협력을 추진해 가기 위해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더욱이 미국과의 동맹을 공유하는 한일간 협력이 그 발판이 되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일본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최종적인 귀결은 북한이 미국 및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국가로 복귀하는 것일 텐데, 북일국교정상화 및 그 연후에 이루어질 일본의 대북 경제지원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도 한일 협력이 지속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한국의 4가지 안보정책 기축을 효율적으로 추진해 가기 위해서, 한일 안보협력은 상수로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와 같이 양국간의 역사 갈등이 경제 및 안보분야에까지 파급되는 것은 한국의 안보이익을 위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첨예화되면서, 미국이 아태지역의 핵심적인 동맹국들인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간 안보갈등이 지속된다면, 궁극적으로 한미간의 신뢰에도 손상이 초래될 수 있다. 또한 북미간의 수차례 정상회담 및 실무협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국제공조를 해야 할 일본과의 사이에 갈등이 확대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한일 안보협력,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하자.
 
다만 한일 안보협력 복원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여도, 일본 정부가 이미 취한 대한 무역규제 조치나 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의 조치를 시정하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유지 방침으로 선회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잠정적으로는 지소미아 부재 상태의 한일 안보협력 및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공 관련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의 양국간 기본협정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대법원 판결문은 한일간 기본협정을 존중하면서, 다만 전시하 행해진 인도주의적 관점의 피해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는 관점에서 전시하 강제징용공에 대한 배상을 일본 기업들에 대해 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물론이고 한일기본협정의 정신을 살리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일본기업에 부과된 배상 책임을 한일기본협정 취지에 따라 한국 정부가 전적으로 부담한다는 특별선언을 하면서 강제징용공 및 위안부 피해자 등에 대한 보상을 우리 정부 책임 하에 실시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2015년 아베 수상의 종전 기념 담화에 나타난 것처럼 역사문제에 대한 명확한 사과 입장을 견지하도록 강력 요청하는 대안을 추구하면 어떨까 한다. 한일관계가 우리 국가이익에 중요하다는 관점에 입각한다면, 이같은 대담한 정책구상의 추진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표방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우리도 동맹국으로서 적극 참가한다는 입장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표방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는 나름 적극 참가하면서, 사실 중국과도 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 정부도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 주도의 전략에 보다 분명하게 참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은가 한다. 그런 점에서 11월 초에 우리 정부가 미국과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간 협력 증진에 노력하는 한국과 미국 공동성명서를 공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미국 및 일본 등과 인도-태평양 전략에 공동으로 참가하면서, 우리는 중국을 포함한 아태지역의 다자안보협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공동안보의 협력어젠다들을 적극 제안하고, 나아가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등 21개국 간에 이미 2014년에 합의한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규범(CUES)의 실효성을 높이는 국제협력 제안들을 적극 발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 진전을 보이지 않고,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은 첨예화되는 한반도 주변의 안보정세 속에서 우리로서는 한국의 안보이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정책 어젠다들을 포괄안보의 관점에서 폭넓게 활용해야 하며, 한일 안보협력은 그 정책목록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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