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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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야누스의 얼굴로 2020년 새해를 시작하자
2020.02.11 Views 960 관리자
2020년 새해를 ‘야누스’의 얼굴로 시작하자
김 유 조
전 건국대학교 부총장, 소설가
전 건국대학교 부총장, 소설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전환의 순간에서 그 누구라고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있으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꾀가 많았달 까, 지혜로워서 난해하거나 골치 아픈 주제들은 신화 속에 이야기의 형식으로 녹여낸다. 예컨대 헌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당에서는 ‘야누스’라는 두 얼굴의 신을 고안해내었다. 야누스는 그러므로 뒤와 앞을 동시에 바라보는 양면 신이었다. 때로 이 신은 인간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원래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인간의 딜레마와 이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인간상을 대변한다. 미래의 비전은 반드시 과거를 되돌아보며 새겨야한다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보면 주인공 로버트 조단과 마리아의 사랑 장면이 나온다. 조단은 중년에 이르기까지 미국 몬태나 대학에서 스페인어 강사를 하며 의미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술회한다. 마리아는 앳된 처녀이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들에 의하여 윤간을 당하고 머리도 박박 깎여버린 후 산속으로 들어온 저항군이다. 두 사람 모두 흔한 말로 그때까지는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아온 무의미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인간의 참된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파시스트 독재에 대항하는 전사로 거듭난다. 인간의 자유를 옥죄는 독재에는 사실 여러 가지 형태와 이념의 탈이 있다. 민주라는 이름의 독재나 공산독재도 이러한 탈을 쓰고 있다할 것이다.
아무튼 뜻 없는 삶을 살아온 이들은 마침내 자유의 가치에 눈을 뜨고 이를 위한 투사가 되었으며 그때까지는 이루어보지 못했던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에도 또한 눈을 뜨고 서로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한 사흘 낮밤 동안 몸과 마음의 사랑을 나눈다. 물론 부여된 임무인 교량의 파괴를 위하여 수 많은 난관과 배신과 역경을 이겨내며 마침내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의 추격을 받게 되자 조단은 사랑하는 마리아와 일행들에게 무사히 퇴로를 터주기 위하여 끝까지 혼자 남아서 기관총을 쏘며 장렬히 최후를 맞는다. 그는 생각한다. 마리아와 지낸 사흘간 72시간은 한 인간의 생애인 72년과도 맞먹는 것이었다고.
뜻있는 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길게 느껴지며 그럴만한 가치가있다. 그와 마리아가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를 할 때에 시간은 가지 않거나 느리게 진행이 되고 영원한 현재로 남는 것을 그들은 경험한다. 우리가 찻집에서 연인들과 함께했던 시간의식을 되새겨 볼만하다. 현명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시간을 잡아먹는 신을 ‘크로노스’라고 불렀고 가치 있는 순간의 시간을 늘리게 하는 신은 ‘카이로스’라고 설정하였다. 어떤 시간을 추구하느냐는 각 인간의 몫이다.
새해라고 마냥 희망으로 들뜰 일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1·4 후퇴’라고 하는 쓰라린 역사가 이 달에 있다. 우리국군 맹호 26연대 혜산진 부대가 압록강 물을 떠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냈던 해에 미군 2개 사단은 개마고원에 은둔한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장진호의 패배와 원산항의 철수를 겪게 된다. 물론 이 후퇴작전은 전략적 후퇴라는 빛나는 성공사례로 미국전사에 길이 기록되고도 있다. 쓰라린 뒤를 돌아보고 앞날의 비전을 세우는 지혜야말로 귀중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 이듬해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우리의 수도 서울을 압박하여 마침내 1·4 후퇴라는 피어린 역사를 기록한다. 이후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막강한 화력과 전술로 저 세계사에도 드문 인해전술을 격파하여 수도를 다시 탈환하고 이어 정전으로 나아가게 된 사정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1월은 환희의 달이면서도 혹한의 계절이다. 후퇴할 때의 춥고 처절했던 사진들을 돌아보며 우리가 이루어낸 오늘의 따뜻한 성취를 더욱 가꾸어나가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