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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세훈 전 국정원장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독재도 용납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개인이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정치이념이요 아름다운 생활철학이다.
그러나 자유는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용납되고 보장된다. 법을 어기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살인강도나 남의 집에 불을 지른 자를 잡아가지 않으면 사회가 불안해서 자유를 누리며 살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없다.
간첩 많아도 ‘증거 불충분’
간첩 보고 못 잡는 세월
원세훈 전 원장 초청 거절했던 이유

글/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국정원이 간첩 못잡는다면…
나는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에서 두 번 만난 적이 있다. 세 번째 초대는 내가 거절했다. 만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나는 6.25를 겪은 사람이기에 국가안보에 대해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국정원장에게 “왜 간첩을 잡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간첩임은 확실한데 아직 증거가 불충분해서 체포를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런 국정원장과 만나 대담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 불러도 가지 않았다.
요새는 간첩을 잡아도 재판정에서 판사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석방울 자주 한다는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누가 “이래야만 선진국이 되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천만에다. 간첩을 잡지 않고 잡아도 무죄 석방하는 나라는 앉아서 망한다. 간첩들은 간접침략의 제일선을 담당하는 자들이라 방임하면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간첩은 독사를 잡듯 모조리 잡아야 되는 것 아닌가.
국회가 있어도 열리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은 국회가 있어도 열리지 않는 나라, 국회가 필요 없는 나라 꼴이다. 군사 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됐기 때문에 국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300여명의 국회의원 명단은 있고 다달이 세비는 나가지만 국회가 없는 나라이다.
국회가, 특히 야당이 임시국회를 소집해 놓고도 국회의원들이 출석을 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마땅한가. 소집자는 국회의장 정의화이다. 그렇다면 소집했는데도 열리지 않는 불성실한 국회를 대표하여 의장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옳지 않은가. 또 의장에게 국회소집을 요청하고도 의사당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야당 때문이라면 그 야당을 징계하는 법은 없는가. 그런 국회의원들은 제명을 하든가 세비를 지급하지 말든가 하다못해 감봉처분이라도 무슨 조치를 취하는 것이 납세자인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의회정치가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의원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모인다.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으면 밤을 세워가며 토론하는 것이 선진국 국회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그렇지 못하다. 일만 생기면 국회의사당 밖으로 나간다.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장외투쟁을 하고야 만다.
이런 국회는 국민의 이름으로 해산할 수밖에 무슨 수가 있다는 말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한민국
세월호 참사가 지난 4월 16일에 일어났으니 벌써 몇 달인가. 세월호의 실질적인 선주의 탐욕과 무책임한 선장 때문에 생긴 참사로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 승객 등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단원고 학생뿐만 아니라 제주도로 신혼여행 떠났던 남녀의 참변도 가슴 아픈 일이다.
비명에 죽은 학생들 중에서 장차 대통령도 나오고 국무총리도 나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신혼여행 길에 목숨을 잃은 내외는 내년이면 아들딸을 낳을 수 있고 그 아들딸이 삼성이나 현대보다 더 큰 기업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고 믿는다.
나는 유가족이 침몰한 세월호에 올라타 울부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꾼들과 각종 과격시위 단골손님들이 앞장 선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고 부추기는 사람들 중에는 대통령을 흔들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자들이 상당수 가면을 쓰고 숨어 있는 것이라고 본다.
왜 세월호 특별법을 대통령에게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인가. 특별법은 국회에서 만드는 것이 3권 분립의 원칙 아닌가. 대통령을 만나도 무슨 소용이 없다. 그 법이 그토록 절실한데도 국회가 제정하지 못한다면 그 국회는 해산해야 마땅하다. 국회가 자진하여 해산해도 유권자인 국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하여 이 세상을 떠난 착한 아이들을 다시 살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세월호와 유병언 때문에 오늘 사경을 헤매는 대한민국은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 반드시 살아날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
각 국에 우리나라 대사들이 나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 만일 대사가 일을 저지르면 우리나라가 망신을 당한다. 운동선수 중에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 그 영광이 한국인 모두에게 돌아온다.
이 나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 여러분 계신다. 우선 광화문에 계시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꼽을 수 있다. 세종대왕이 있기에 한글이 있고 그 한글이 조국을 빛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다면 임진왜란 때 패배하여 영구히 일본의 속국이 됐을 것이다.
전세를 비관하는 조정에 대해 “아직도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사옵니다”라고 장계를 한 장 올리고 용전분투하신 충무공 덕분에 오늘의 한국이 있는 것이다.
일제하에서는 안창호, 이상제 선생이 계셨고 해외에서 활약하신 이승만과 김구가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인은 어디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나라를 대표하는 그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일제의 압박을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이 나라에 대표적인 한국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면 과연 누구인가. 그런 인물은 없다고 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오늘 한국을 대표할 만한 ‘겨레의 양심’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민족의 내일이 걱정스럽다.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람 없는가
당당하게 사는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다 존경스럽다. 긍지나 자존심이나 영어로 ‘프라이드’라는 말 자체가 인간의 가치를 높인다. 학식이 높을 수도 있고 빈약할 수도 있지만 만나보면 나도 그런 사람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학벌 좋고 문벌도 좋고 사회적인 지위도 대단하지만 어딘가 비굴하고 떳떳치 못한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과는 오래 마주 앉아 있기가 민망하다. 전혀 인간적으로 흥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속물’이라 하지만 그런 속물에게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제일 높다. 총리 같은 사람을 두고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고 한다. 그래도 총리 위에는 한 사람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비굴할 까닭이 없다. 그래서 당당하다. 그러나 총리는 다르다. 총리나 장차관이나 국장은 비굴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른들에게는 말해야 소용이 없지만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권면한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라고. 일류 대학을 못 다녔어도 떳떳할 수 있다. 쥐꼬리만한 월급 밖에 못 받아도 당당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프라이드를 지니고 절대 저자세로 살아서는 안 된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나는 20대에 진명여고 영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진명에는 이세정 교장이 계셨는데 이 분처럼 현모양처 육성에 고심하신 교육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 교장께서 어느 날 교직원 모임에서 중국 한나라 무제 때의 역사기록을 담당했던 사관 사마천에 관해 말씀하셨다. 사마천은 “나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뒤 나는 원전을 뒤져 사마천의 그 말을 찾아볼 기회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어른이 한학에 능통했으므로 그 말을 그대로 믿고 60년 동안 사마천을 우러러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하며 살았다. “남에게 말하지 못할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고 살자”고…
그러나 나의 86년의 생애를 돌이켜 보면 유년기를 마치고 80년 동안 남에게 말해줄 수 없는 일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삶은 결코 떳떳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 한 번 이런 양심고백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가 보다. 내 죄는 용서 받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날마다 용서를 빌며 나의 인생의 황혼길을 간다. 해가 지기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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